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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Dec 31. 2021

내가 만난 사람들

03.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시간이다. 어떻게 우리는 20년 간 친구일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자격 박탈이다. 내 기억력이 정말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예시로, 나는 오늘 먹었던 아침 메뉴에 대해서도 잠깐의 생각을 거쳐야 한다. 오빠가 입대하기 전 가족끼리 다녀온 여행에 대한 기억은 무(無)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매번 적고 메모하냐고 하지만, 그건 전부 내 미비한 기억력 때문이다. 더블체크는 습관에 가깝다. 나는 나를 안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한다. 


   다만 신기하게도 오히려 나는 아주 사소한 기억에 특화되어있다.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모두 자신에게 인상 깊었던 경험만 기억으로 남겨 놓기 때문에 같은 경험을 하고서도 누군가는 그것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황은 멈춘 채로 제자리에 있는데, 그걸 경험하고 지나온 현재의 우리는 모두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끝내 대화의 말미에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 부르는 것이다. 여기 그 사소한 추억으로 이어 붙여진 두 명의 친구가 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같은 유치원을 나왔다. 학예회 같은 것을 할 때 찍은 사진 언저리에 친구 S와 A가 보인다. 소풍을 가서 찍은 사진 속 물감 묻힌 얼굴 너머에도 그들이 꼭 끼어있다. 놀랍도록 그 누구의 기억에도 선명하지는 않다.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인지했던 것은 초등학교 무렵이다. 친구들은 어떻게 기억할지 몰라도 내 기억에서는 S가 먼저다. 



   당시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에 S가 살았고, 나는 그 아파트 근처 다른 아파트에 살았다. S가 사는 아파트 상가에는 세탁소, 문방구, 정육점, 분식점 등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세스 키’라는 작은 영어 학원이 있었다. S와 나는 그 학원에 다녔다. 그 학원에 같이 다니면서 친해진 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히 어떻게 친해졌는지 구체적인 시작점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학원이 끝나면 S의 집으로 가는 초입에 있던 주민들을 위한 배드민턴장 언저리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대화는 주로 ‘미세스 키’ 원장님의 뒷담화로 시작되었다. 지금은 현재 나의 나이와 당시 원장님의 나이에 큰 차이가 없으니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우리에게 원장님의 교육 방식은 강압적인 구석이 있었다. 매해 청소년수련관에서 개최하여, 원생들의 가족들을 초대하는 ‘영어연극대회’ 준비가 시작되면 우리는 해가 저물고, 오뎅이랑 묵을 파는 아저씨가 지나가고, 소독차가 지나갈 때까지 엉덩이가 시리도록 그 자리에 앉아 떠들곤 했다. 선생님한테 악의가 있었다기보다 원하지 않는 것을 위해 그토록 애를 써야 한다는 게, 심지어 혼이 나야 한다는 게 싫었다. 우리는 그때 선생님을 미워한다고 믿는 것 같았지만.


   우리가 그런 이야기로 친해졌다지만, 그런 이야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럴 수도 없었던 것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우리가 흥미로워하는 것들은 당연히 ‘미세스 키’의 담장 너머에, 그것도 아주 훌쩍 너머에 있었다. 우리는 같은 중학교에 간다. 그리고 A에 대한 뚜렷한 기억은 여기서 시작된다.


   말했듯이 A는 S와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때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와의 ‘기억’이라고 불릴 수 있을만한 무언가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A가 지금도 자주 언급하는 사건이 있다. 우리는 당시 같은 특별활동부서였다. 독서부라고 불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활동을 했다 (책을 너무 사랑해서 토요일 특별활동마저 도서관에 가는 선택을 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는 고작 특별활동에 우리의 귀중한 토요일을 공들이고 싶지는 않았던 그저 그런 중학생이었다. 도서관은 마침 우리 모두의 집에서 가까웠고,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다른 그 어떤 특별활동에 비해 쉬웠다). 그 부서에 우리 A, S, 그리고 내가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A와 나는 같이 잘 다니기는 했다.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친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을 뿐. 아니, 그것보다는 서로를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려나···. 하지만 딱히 불편한 것도 없었고, 나도 A도 낯을 가렸기 때문에 누구 한 명이 적극적으로 관계 도모를 위해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 같이 종합시장 갈래?”


   나도 도무지 알 수 없다. 옷을 사거나, 문구류를 구경하는 게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었을 텐데 나는 어쩐 일인지 어떤 주말에 A에게 연락했다. A는 그때, ‘얘 대체 뭐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얼떨떨한 내색 없이 A는 태연히 승낙했고,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그날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또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당시 멋진 애들만 간다던 ‘종합시장’에서! (A가 이 오래된 이야기에서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난 심지어 이것조차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우리의 갑작스러운 회동 전후로 싸이월드 일촌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싸이월드 일촌 따위가 뭐라고 그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애가··· 아니, 심지어 우리가 같이 다니는 무리 기는 하잖아!’ 이런 이야기가 기억나는 걸 보면 회동의 전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내 행동이 더 어이없었을 것이다. ‘아니, 뭐야. 대체···?’)



    그때부터 우리는 친해졌다.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친하다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지만, 그때는 가족보다 자주 보는 게 친구들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좋으나 싫으나 가야 하는 학교에 좋든 싫든 친구들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얘들과 친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에게 그것은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후로 성실하게 돌아오는 서로의 생일을 챙겼다. 꼭 생일 언저리에 누군가의 집에 다 같이 모여 축하하고, 치킨을 먹고, 밤이 다 가도록 떠들었다. 얼굴 보면 하지 못 하는 간지러운 이야기들을 편지에 담아 사실 내가 표현이 서투르지만 얼마나 너를 소중하게 여기는지 내 작은 세상에서 네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전했다. 작심삼일이면 끝날 이상한 토론 모임 같은 것도 열고, 시험 전날 밤이면 되는 애들끼리만 모여 다음 날 시험 과목들을 공부한 뒤, 시험이 끝나면 집에 와서 장렬히 전사하기도 했다. 다른 고등학교를 갔어도 전통은 이어졌다. 스무 살이 되어 동네에 있는 호프집에 들어가 처음 술을 같이 마신 애들도 얘네다. 함께 펜션을 빌려 고기도 구워 먹고, 바다도  구경하고, 말도 안 되는 사진을 찍어서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다. 서로를 화나게 하고, 서로를 즐겁게 하고, 슬프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외롭게 하고, 무엇보다 서로이게 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우리의 미래를 부정하지 않았다. 영원할 거라고 믿은 게 아니라,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냥, 그게 너무 당연해서. 추억으로 따지자면, 여기에 옮길 수 없다. 대단하진 않아도 그들은 내 역사 그 자체에 자리매김하고 있기에 빠짐없이 적을 수는 없다. 그러기엔 내 기억력은 미달이고, 분량은 우량이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다. 분명 그런데···.



   도무지 A와 S 없이는 ‘나’를 이야기할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저 그렇고 그런 어디에나 있는 아이였던 때의 나를 이야기할 때뿐만이 아니라, 그냥 ‘나’. 


   A와 S가 모르는 내 이야기는 없다. 우리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르게 가면서, 우리가 다른 목표를 지향하면서, 우리가 다른 직장을 다니고, 다른 친구를 사귀면서 생기는 변화와 근황 같은 것 말고 진짜 내 이야기 말이다. 흔히들 말하는 볼 꼴 못 볼꼴을 서로에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한심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냥 그럴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 크고 작은 다툼, 불화, 서로를 향한 질투나 자격지심, 나를 외롭게 만드는 것에 대한 슬픔 그런 것들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오랜 친구였던 만큼 우리의 역사는 지지부진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난 정말이지. 셋 중에 최고다. 나 스스로가 자진해서 못난 사람임을 내보이면서도 자존심은 세서, 눈물 콧물 빼면서 힘들다고 토로하다가도 갑작스레 입을 꾹 다물고 스스로를 가두곤 했다. 얘넨 그런 나의 모든 찌질한 역사를 다 알고 있다. 내가 누구한테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 그냥 쿨하고, 재수 없는 애로 보이는 게 쉽다고 여기는 내가 사실은 손톱 깨물며 낯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얘들은 알고 있다. 셋 중에 가장 독립적이라고 믿었던 내가, 관계 의존도가 가장 낮다고 믿었던 내가 실은 이 지지부진하지만 유일한 관계에 가장 의존하고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른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할 자신이 없다. 나를 설명할 자신이 없다, 더 이상은.


   A와 S에게 빚을 갚을 수 있을까. 가끔은 그건 전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얘넨 나랑 친구 하는 이유가 뭘까. 있는 자존심 없는 자존심 다 부리면서도, 결국 빈손이라는 것을 들키는 것이 얘네에겐 부끄럽지 않다. 내가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이제는 그토록 유일하고 중요하다는 둘에게까지도 열등감을 느낀다는 사실. 난 언제나 넓은 그릇의 A와 S 앞에서 작아지고 있었다. 결국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도 늘, 걔네였지만···.


   S는 나무 같은 존재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 동안 S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감정이 널을 뛰는 나에 비해 S는 쉽게 흥분하지 않았다. 큰 소리도 잘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무는 어떤가. 바람에 쉽게 가지와 잎을 흔들면서도, 그 뿌리와 몸은 굳건히 서있지 않는가. S는 멀리서 보면 타인에게 쉽게 수긍하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면 고집이 센, 그러니까 자신이 확실하게 정한 뜻이 있다면 결코 굽히지 않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가 가진 평이한 감정선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명확함 그 자체인 것 같다. 실제로 S는 우리 중 가장 칼 같은 구석이 있었다. 온화하게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관계에서의 불합리를 인내하던 S가 돌아서면 결코 다시 마음을 돌리는 경우는 없었다. 이후에도 질질 끌며 쓸데없는 감정소비를 하지 않았다. 물론 실제로 그녀가 어떻게 느꼈을지 내가 확신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적어도 내 눈에 그녀는 명확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변치 않는 명쾌한 모습이 좋았고, 또 부러웠고, 무엇보다 안심이 됐다. 그녀의 단단함이 좋았다. 고집이 좋았다. 


   A는 그에 비해 감정의 잔여물을 도무지 가라앉히지 못하는 법을 택했다. 고요하게 침잠하려 치면 다시 뒤섞기를 수 차례, 내가 그녀를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나 역시 그녀와 같기 때문이다. 만나면 기본 세 시간을 떠드는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 또 반복하면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집중하곤 했는데, 그건 정말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정말 그랬다. 정말 늘 새로운 마음으로 이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리길 바랐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풀면 엉키게 해 버리고, 다시 풀면 엉키게 해 버리는 서로를 알기에 우리는 서로의 가위 역할을 대신해주기도 했다. 반면, 우리는 얼마나 다른지. 정말 많이 할퀴었던 것 같다. 막말을 하거나 쏘아붙인 적은 없지만, 서로와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가 많았다.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것을 아니까 곧잘 대화로 풀었지만, 우리가 각자의 세상을 구축하며 생기는 변화를 일일이 알진 못했기에 갈수록 ‘침묵도 대답이다’의 안 좋은 예가 속출하곤 했다. 서로를 답답해하면서도 자존심을 건들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무는 법을 택했는데, 그러면서 우리가 상처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인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내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선택하곤 했다. 그건 우리 둘 모두가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닮았는지, 어느 점에서 양극인지를 잘 알고 있고, 확실하지는 않다고 해도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인정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그녀를 서운하게 만들 때나, 그녀가 나를 속상하게 만들 때는 나도 그녀도 아마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대화처럼 돌고 돌아 제 자리다. 그리고 익숙하게 새로이 서로를 맞이하는 것이다. 이런 우리를 두고 S를 포함한 내 친구들은 둘의 사이가 꼭 ‘연인’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와 A도 이하동문이다.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20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제 다음 해가 온다. 놀라움은 없지만, 지겹지는 않다. 그리고 난 이런 우리의 관계가 계속됐으면 한다. 얘넨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지루함이자 지지부진함이다. 



   늦어서 미안해, 얘들아! 올해는 안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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