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혜 Mar 23. 2024

한 개의 큰 사랑보다 백 개의 많은 사랑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바로 내가 후자의 사람이다. 나는 고만고만했다. 나만의 특별한 친구가 있지는 않았지만, 두루두루 잘 지내 부모와 교사의 손이 가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만의 친구’가 없으면 곤란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체육 시간에 짝을 지을 때, 현장학습 고속버스에서,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 같은 공백에 나는 자주 얼굴이 빨개졌다. 마지막까지 선택되지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사이의 시간이 부끄러웠다. 그 나이에는 혼자인 게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대학 졸업반이 될 때까지 늘 나만의 친구, 내가 낄 수 있는 무리를 찾아 헤맸다. 새 학년이 될 때마다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지 못 한 채, 한 해를 같이 보낼 수 있는 친구를 찾아 헤맸다. 어떤 해는 영혼의 쌍둥이 같은 친구와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해는 날카로운 친구를, 어떤 해는 지나치게 독점적인 우정을 원하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들의 기분에 따라 나의 감정선도 널을 뛰곤 했다.


내가 맨 처음 해방감을 느낀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동기 남학생들이 우르르 군대에 입대하고, 여학생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복수전공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온전히 내가 먹고 싶은 점심 식사를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먹을 수 있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찍은 학생식당의 돈가스 사진이 아직도 내 클라우드에 여전하다. 그때부터였다. 친구들과의 느슨한 연결이 시작된 것은. 관계에 서늘한 바람이 드니, 온전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 전까지는 한 명으로부터 백 가지를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백 명의 친구들로부터 한 조각씩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나만의 멀티버스 백 개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투자의 기본은 한 바구니에 모든 계란을 담지 말라는 것이었던가. 많은 친구들에게 1만큼의 사랑과 우정을 받아 채우는 인생은 참으로 다채롭고 충만했다. 다만, 나는 이것을 내 인생과 일에는 적용하지 못했다. 인생의 모든 자존감과 성취감을 일 하나로만 채우려고 아등바등했다. 프로젝트가 잘못되면 내가 잘못될 것 같아, 프로젝트 멤버가 해야 하는 일도 내가 대신 밤을 새워 채웠다. 1시간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준비 자료만 서너 번씩 검토했다. 5분만 늦어도 자존심이 상해 택시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나는 자주 일에 휘둘렸고, 일이 잘못될까 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번아웃을 세게 맞은 나는 2023년도, 반강제적으로 일의 양을 줄일 수 있었다. 내 삶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이 없어지니, 내 삶의 너무 큰 부분이 뜯겨나간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그 시간을 오로지 불안만으로 채웠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금세 채워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그룹PT 수업, 동네 알라딘 중고서점 들르기, 저 멀리까지 시간을 체크하지 않고 오래 걷는 산책. 백 가지 일에서 기쁨과 성취감을 하나씩 뽑아 들었다. 더는 일에 조종당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사이드 프로젝트, 퍼스널 브랜딩….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종종 이런 좋은 단어들은 우리의 머릿속을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으로 만든다. 2024년 새해에는 일 말고 다른 것들에서도 만족감을 느끼자. 그리고 작고 소소한 행복을 아주 많이 만들어두자. 내 일상에 일 외의 것들을 우선순위에 올리자. 우리는 고속버스에서 내 옆에 앉아줄 한 명의 친구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더는 아니다. 오히려 계속 히치하이킹을 하며 점점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편에 가깝다. 우리와 느슨히 연결된 것들이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줄 것이다.


** 글로벌 이코노믹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g-enews.com/article/Opinion/2024/02/202402211237078699e8b8a793f7_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