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료들과 얘기하다 보면 직장인들 사이에서 도는 허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몇 개 있다.
1. 나 퇴사할 거야
2. 나 카페 차릴 거야
3. 나 유튜브 할 거야
뭐든 회사보다 나을 거라는 말인데, 한때 나라고 다르지 않아 한때 나도 유튜브로 직장인 브이로그를 꿈꿨다.
" 본업 회사원 부업 브런치 작가 하는 사람이 노래 부르고 밥 해 먹다가 잘 때 듣기 좋은 책 읽어주는, 유튜브?" 뭐 가제는 이러했다.
왜 포기했냐 하면 바야흐로 유튜브 춘추 전국시대를 맞는 이 시대에 뭐 하나 뛰어난 능력으로 빵 뜰 자신이 없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하고 싶은 거 참 많고 생각도 많은데 어중간하다는 데에 고민이 있었다. 나, 퇴사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어중간하다는 건 moderate 그 자체다. 금방 공감을 살 수도 있고, 굳이 눈에 띄어 모난 돌로 정 맞지 않아도 되고 어디에 그저 묻혀 있어 마음 편하게 흘러가듯 살아도 된다. 다른 사람과 같은 길을 가면 편하긴 하다.
물론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자유에 그리 관대하지 않아 대단한 책임감이나 능력이 있는 자만이 이러한 자유로울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선택을 따라가면 어느 정도 이러한 자유의 책임에서 벗어 날 수 있다. 만약 회사를 다니지 않고 사업을 한다던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자율학습을 한다던가, 어떤 사람이 이런 삶을 산다고 하면 아마 으레 이런 질문은 하나씩 꼭 따라올 것이다. “굳이 왜?”
그 어떤 누군가도 타인의 삶을 재단할 자격은 없으나 자격의 득실에 무관하게 이 사람은 왜 일반적인 형태와 다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지지 않을까. 여태 나는 그게 무서워 그로부터 도망쳐 군중에 숨어왔다. 어느쪽에라도 속하려 노력하며 이곳 저곳 나를 숨겨왔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해 눈에 띄었다. 평범하게 숨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였다.
근데 최근 들어 평범하다는 사람들이 평범해서 성공했다는 얘기들을 자꾸 늘어놓기 시작했다.
본인이 그저 방구석 음악인일 뿐이라는 싱어게인의 이승윤이 등장해 “어둠 속에 묻혀있는 이름 없는 개인은 내가 살아온 삶이자 삶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라더니 우승을 해버렸다. 좌절의 연속인 줄 알았던 늦깎이 아나운서 지망생였던 장성규는 이제 예능계를 리딩 하는 주체가 되었다. 경계선에 있기 때문에 애매하다던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 기어코 성공하는 모습이 어찌나 성취감 있는지. 그날로 그들은 애매한 사람의 발전에 대한 생태계를 만들어버렸다. "어느 쪽도 아닌 부류"라는 생태계.
그래, 사실 애매하다는 것, 어디도 뛰어나게 잘하지 못한다는 것도 어쩌면 다르게 말하면 얕게라도 넓게 재능이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건 호기심이 많다는 것 아니겠는가.
경계선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존재 자체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 혹은 모두와 대화가 가능한 관심사를 가진 큰 스펀지를 가진 사람일 수 있다. 자기만의 날을 무뎌지지 않게 품고서도 다양해 많은 분야를 포용하고 끌어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