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희로운 Aug 21. 2021

마음의 거리두기에 대하여

코로나 시대의 이별은 자연스럽고 갑작스럽다

4단계로 인해 통제가 강화되면서 외출시간이 줄었다. 이 시국에 갑자기 누굴 불러내 만나기도 미안하고 또 내가 피해를 줄까 죄스러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청소와 요리를 하고도 시간은 감당이 안되어 온종일 쓸고 닦고 정리하고 가구 배치를 바꿔보아도 줄지를 않았다. 갑자기 늘어난 자유 시간에 속절없이 SNS를 구경하다 보면 참 여러 소식을 듣게 되기도 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고 싶었던, 사람들도 포함이었다.


이 시국은 우물쭈물 망설이는 많은 사람들을 더 기다리지 못하게 하는 촉매가 되기도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갈라놓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 몇몇 사람들을 멀어지게도 했다. 나만 해도 회식을 해본 지가 오래고 지역이 먼 팀원들의 경우 랜선으로만 존재를 확인할 땐 어쩐지 멀어진 듯 한 서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시기에 갑작스레 바빠진 사람이 생겼을 때엔 저녁 먹기도 어려운 이 시국에 밖으로 따로 불러내기도, 찾아가기 애매하기도 했다. 반대로 이 시대라 한가해진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었다.


“바쁜 게 왜 별로냐면 소중한 게 성가셔져,”

어른들의 말 틀린 것 하나 없다더니 상황도 시대도 마음도, 그 무엇도 아버님의 조언을 지킬 수는 없었던 듯하다. 이 시대라 한가해진 나와 이 시대라 바빠진 사람 사이에 얼마큼의 갭이 있었던 것인지. 이해는 하지만 아쉽고 서운하긴 여전하다.


사람이 멀어진 다음에 가장 아쉬운 게 무얼까.

나는 다른 무엇보다 "잘됐네," 라는 말을 해줄 수 없는 사이라는 게 슬펐다. 더 이상 기쁨도 슬픔도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사이라는 것이 어떠한 거리 그 이상이 있다는 을 눈으로 직면해야만 한다는 것이 슬펐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아마 거짓말이었을 테다. 여전히 좋은 사람이고 어쩌면 언젠가 한 번쯤은 다시 마주치게 될 거라는 그 말.


알고 있었다.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란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내게 한줄기 구원과도 같았다. 빈말이어도, 가공한 것이라도 좋았다. 매일매일 서로를 겨누던 당장의 뾰족한 총구를 바라보는 것보다야 그쪽이 더 나았다. 그동안 그는 언제나 도망갔기 바빴고 난 언제나 잡으러 가는 쪽이었다. 탓을 하려는 것은 아니라 다만 잘하는 것이 달랐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선이 평행하다는 것은 나쁜 일일까 좋은 일 일까. 왜 겹치지도 않는 선의 존재를 알아버린 걸까. 그댄 내게 우리의 길이 어긋났다고 했으나, 우린 어긋난 게 아니라 처음부터 평행이었다. 처음부터 달랐다. 많은 날들을 무수히 많이 겹쳐보려고 노력했으나 평행선은 원래 만날 수 없다.


다만 이것이 지속 가능하다는 말임을

슬프지만 또 안다.

      

오히려 평행하기에 같은 방향을 오래갈 수 있겠지. 결이 비슷하다는 것이 착각은 아닐 테다. 하지만 평행하기에 만날 수도 없겠지. 각자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방향도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다가가려면 꽤나 팽팽한 고무줄을 뛰어난 장력으로 당겨야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끊어지기지 않고서야 지속하기 어렵겠지.

아, 난 가끔 내가 과학을 몰랐으면 좋겠다.


슬프게도 거리가 멀어지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왜 옛 말 중엔 틀린 말이 없을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너무 큰 슬픔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엔 그 말은 내게 체념으로 인한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체념이라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때때로 필요 악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차피 나에게 선택권은 많지 않았다.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 그게 내가 나의 감정을 다스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생각하던 몇 개의 Side job 개요를 짜 놓고 밀린 업무를 정리했다. 바로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당장은 미칠 것 같은 불안과 터질 것 같은 괴로움을 주었지만 닿을 수 없다는 체념은 내 불에 찬물을 끼얹어 금세 안정되게 만들었다.


이 시기가 계속되며 혼자 있는 것엔 어느 순간 체념이 함께 했다. 나를 탓하던 시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졌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으며 빈 틈을 메우기도 했다. 이 관계는 원래 논리보단 감정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고 서운했던 내가 더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잘못은 아니였단 말은 나를 무너트리고 또 일으켜세웠다.


하지만 여전히 이렇게 태워버리는 것보다 서서히 식히는 쪽이 안전하다는 의견엔 변함이 없다. 그 과정은 썩 유쾌하진 않았고, 혼자 남겨져 잿더미만 남은 것을 보는 일은 언제나 마음이 좋지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다음에도 문득 흔적에 멈칫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모두 팽팽한 고무줄이었기 때문일까. 아무도 끊어지지 않아 다행인 장력의 흔적인 것인지. 혹은 이미 늘어나 돌아갈 수 없는 흔적인 것인지. 또 다음 행복에 따뜻하게 끓고 나면 다시 돌아갈 수는 있을런지.


사실 나는 내가 고무였는지 철이었는지.

혹은 그 무엇도 아닌 플라스틱 그 어딘가였는지.

또 앞으로의 몇 날을 이렇게 혼자 보내야하는지.


21년 여름은 여전히,

안 밖으로 거리두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