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두가 창업하고, 아무도 장사하지 않는가?

브랜딩은 했는데, 매출은 없다

by Simon park

서울 성수동, 연남동, 한남동.

걷다 보면 카페인지 쇼룸인지, 갤러리인지 애매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간판은 없고, 간지는 있다.

메뉴판보다 브랜드북이 먼저 보이고, 커피보다 폰카가 먼저 눌린다.

바리스타는 디자이너고, 사장은 크리에이터다.

매출은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있다.

인스타그램 속에서는 분명 ‘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는, 사업을 하지 않고 콘텐츠를 운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창업은 더 이상 물건을 팔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이미지를 생산하는 퍼포먼스다.

메뉴 구성보다 로고 디자인이 먼저고, 원가 계산보다 브랜드 컨셉이 중요하다.

메뉴판보다 ‘우리 브랜드의 철학’이 먼저 소개되고, 가게 이름보다 대표의 라이프스타일이 먼저 소비된다.


그런데 문제는,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페는 수익보다 세계관을 팔고, 편집숍은 상품보다 큐레이션을 강조한다.

그래서 ‘사장’은 넘쳐나지만, ‘손님’은 점점 줄어든다.


가게를 연 지 3개월 만에 ‘나의 창업 노하우’ 강의를 시작하고, 브랜드를 런칭한 지 반년 만에 굿즈를 만든다. 정작 물건은 안 팔리는데, 모두가 ‘브랜드’를 팔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장사는 이윤을 남기기 위한 행위였다.

그런데 지금은 손해를 보면서도 ‘내 세계관을 공유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사람들로 넘친다.

사장은 있는데, 장사는 없다. 고객은 없는데, 후기는 넘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자영업이 생존 수단에서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규직이 줄고, 고용이 유연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자영업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 자영업은 단순한 ‘노동의 연장’이 아니라, 브랜드화된 자기표현의 장이 되었다.

노동이 고통이라면, 창업은 스타일이다.

그래서 장사는 점점 덜 현실적이 되고, 더 감각적인 것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브랜딩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브랜드는 필요하다.

하지만 브랜드만 있고 제품이 없으면, 그건 허상이다.

매출이 아니라 콘텐츠로만 존재하는 사업은 결국 지속 불가능하다.


실은 다들 알고 있다. 이게 진짜 장사는 아니라는 걸.

그런데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스템 안에서는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 잘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착시의 끝에는 자기 착취와 구조적 생존 불가능성이 기다린다.


콘텐츠는 쌓이지만 자산은 쌓이지 않고, 팔로워는 늘지만 고객은 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잘 지내보이더라”는 말 하나에, 모두가 안도한다.


창업이 콘텐츠가 되는 사회.

장사는 콘텐츠를 위한 배경 세트로 전락하고, 생계는 포기된 채 이미지가 우선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세련된 브랜딩이 아니라, 정직하게 장사하는 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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