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왜 정치에 실망하고, 노년은 왜 집착하는가?

by Simon park

정치는 원래 미래를 위한 것이었다.

다음 세대의 삶을 더 낫게 만들겠다는 약속,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희망.

그런데 지금 정치는 과거를 되돌리기 위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청년들은 점점 정치에서 멀어지고, 노년층은 더욱 정치에 집착한다.

누가 더 책임 있는 유권자인가를 묻기 전에, 우리는 이 ‘정치적 효능감의 역전’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

청년은 왜 실망했을까? 단순하다.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표를 하고, 집회를 하고, 목소리를 냈지만 돌아온 건 '公約'이 아니라 '空約'이었다.

기성세대는 '예전보다 나아졌잖아'라지만, 청년은 '예전엔 적어도 가능성은 있었잖아'라고 말한다.


청년에게 정치는 무기력이다.

집은 사라졌고, 직장은 불안하며, 미래는 안개 속이다.

정치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한 세대.

그들은 이제 투표보다 탈정치를 선택한다.

'누구를 뽑을까'보다 '어떻게 버틸까'에 더 집중한다.


반면, 노년층은 왜 더 정치에 집착할까? 정치가 여전히 삶에 영향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의료보험, 부동산 세제. 정치는 그들에게 직접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은 한때 정치가 삶을 바꿨던 시절을 기억한다.

독재가 끝났고, 투표로 권력이 바뀌었으며, 거리에서 역사를 바꾸었던 기억.


그래서 그들은 ‘정치는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어떤 면에서 아름답지만, 때로는 위험하다.

특정 진영에 대한 맹신, 언론보다 유튜브를 신뢰하는 구조, 사실보다 믿음을 중시하는 태도.

이는 감정의 정치, 즉 ‘정치의 콘텐츠화’를 더 부추긴다.


세대 간의 단절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다.

경험의 단절이고, 기대의 단절이며, 감정의 단절이다.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는 세대와 느끼지 못하는 세대가 한 나라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

그 간극이 지금 우리가 겪는 불안과 혐오의 근원일지 모른다.

청년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단지, 정치가 관심 가질 만한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지금 정치가 가장 크게 실패하고 있는 이유다.


정치는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모두의 삶을 연결하는 책임이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정치는 필요하지만, 미래를 설계하지 않는 정치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정치는 지금, 세대 간 감정의 불신을 조율할 수 있는 언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년은 점점 더 조용해지고, 노년은 점점 더 외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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