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쉬는 게 더 피곤해졌을까?

by Simon park

하루를 끝내고 침대에 눕는다.

넷플릭스를 켠다. 귀로는 대사를 듣고, 손으로는 쇼츠를 넘긴다.

퇴근한 몸은 소파에 눕지만, 머리는 여전히 일하고 있다.

알고리즘이 던지는 콘텐츠들을 스캔하고, 그중에 가장 짧고, 가장 자극적인 것을 골라 정신없이 소비한다.

쉬는 건데 피곤하다.

쉬고 있는데 쉬는 것 같지가 않다.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

아니, 쉬는 법마저 잘해야 하는 시대.

요가를 하든, 명상을 하든,

심지어 여행을 가든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뭔가를 남기지 않으면 낭비처럼 느껴진다.

휴식은 더 이상 멈춤이 아니라 ‘자기관리’가 되었다.

마음을 위한 시간조차 퍼포먼스가 되었고, 나를 가꾸는 시간조차 생산성을 요구한다.


이쯤 되면 쉬는 것도 일이 된다.

‘자율’은 한때 인간 해방의 언어였다.

“자율 출퇴근제”, “자율 근무”, “자율 학습”.

그런데 어쩐지 이 자율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우리는 더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

자율은 자유가 아니라 자기착취의 기술이 된 셈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구조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쉼 없는 몰입’을 긍정적으로 미화한다.

‘요즘은 다 이렇게 살지 뭐’, ‘이게 열정이지’라고 위로한다.

그렇게 쉬지 못하는 것을 미덕처럼 말하는 사회는, 결국 멈춘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

‘왜 멈췄냐’, ‘더 안 할 거냐’, ‘게으른 거냐’는 식으로.


플랫폼은 이 틈을 놓치지 않는다.

유튜브는 “당신을 위한 추천”이라며 끝없는 자극을 제공하고,

넷플릭스는 “다음 에피소드 자동 재생”으로 귀찮음을 제거한다.

선택은 사라지고, 피로는 예고 없이 연장된다.

쉬려고 켠 기계가, 결국은 뇌를 한참 더 굴린다.


그리고 이 피로는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주말에 쉬지 않으면 불안한 직장인,

연락을 끊고 휴대폰을 꺼야만 겨우 숨이 쉬어지는 직장 너머의 노동자.

심지어 명상 앱을 켜고서도 ‘명상 잘하고 있나’를 확인해야 하는 불안한 사용자.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진짜 쉬는 법을 모르고,

쉬지 않으면 불안하고,

쉬는 것조차 성과가 되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진짜 쉬는 법이 사라졌다.

아니, 빼앗겼다.

아니, 우리가 스스로 내려놨다.

지금 필요한 건 4박 5일의 동남아 여행도, 2박 3일의 워케이션도 아니다.

어쩌면 필요한 건 딱 30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일지 모른다.


멍하니 창밖을 보는 것이 사치가 아니라,

필요한 리셋이라는 감각.

아무 성과 없이 하루를 보내도 괜찮다는 용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능력.

그것이 사라진 사회는 이미 충분히 병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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