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참 쉽게 회사를 그만둔다.
몇 달 일하다 "나와 맞지 않는다"고 말하고, 사직서를 낸다.
이직도, 퇴사도 이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처럼 여겨진다. 마치 트렌드의 일부처럼.
플랫폼도 유연성을 강조한다.
‘내가 일하고 싶은 시간에만 일해요’, ‘정규직보다 자유롭고, 더 많은 기회를 갖는다.’
그런 말들이 마치 노동자의 선택지를 넓힌 것처럼 포장된다.
하지만 그 ‘선택’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돌아갈 수 있는 안전지대가 없다는 사실이다.
유연한 노동은 퇴사를 쉽게 만들었지만, 복귀를 어렵게 만들었다.
회사에서 떠나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 다시 일하고 싶을 때, 우리는 그 문턱 앞에서 좌절한다.
이력서의 공백은 설명이 필요하고, ‘잠깐 쉬었다’는 이유로 신뢰는 사라진다.
노동은 유연해졌지만, 고용주는 단단해졌다.
복직이 어렵다는 말은 구조의 거절이다.
개인이 멈추는 건 자유지만, 다시 시작하는 건 시스템의 허락이 필요하다.
플랫폼은 이 허락을 책임지지 않는다.
회사는 ‘우린 가족이야’라고 말하면서도, 복직에는 가족보다 더한 심사를 요구한다.
유연성은 누구의 편이었을까?
기업은 정규직 대신 계약직과 프리랜서를 늘렸다.
고용의 부담 없이, 필요할 때만 사람을 쓰고, 필요 없을 땐 계약서를 찢는다.
우리는 자유를 얻은 게 아니라, 책임에서 해방된 고용주만을 위한 자유를 보장해준 셈이다.
‘유연한 노동’이란 말은, 사실상 ‘책임 없는 고용’을 뜻한다.
우리는 떠날 수 있지만, 돌아오긴 어렵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일방통행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점점 더 많은 이직을 낳았고, 더 많은 공백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공백을 책임지는 구조는 없다.
이직과 퇴직은 자유지만, 복직은 구조다.
그 구조는 대부분 비정규직, 파견직, 플랫폼 노동의 이름으로 개인을 받아들이지만, 과거와 같은 신뢰와 안정은 주지 않는다.
그러니 묻게 된다.
이 유연성은, 누구에게 유리했는가?
모두가 자유롭게 떠날 수는 있다.
하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은 점점 늘고 있다.
그 자유는 결국, 방향 없는 탈출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