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writers are good readers
읽다 보면 쓰고 싶어 진다. <태도의 말들> 무엇이든 하루에 세줄만 쓰라고 했다. 퇴사하고 일주일에 평균 약 2권씩, 고작 열댓 권의 책을 소화했을 뿐이다. ‘나의 글’이란 걸 쓸 수 있기 전에 ‘남의 글’을 더 깊이 있게 읽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쓴다.
즐겨 읽던 소설 카테고리에서 산문집, 에세이와 인문학 서적 정도로 관심사가 옮겨왔다. 소설은 나를 전혀 다른 공간으로 옮겨놓는다. 자세한 묘사가 이어질 때면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그 공간 구성이 된다. 타인의 삶을 경험하고, 그 맥락 속에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보듬게 한다. 에세이 혹은 산문집, 인문학은 좀 더 내 삶과 더 닿아 있다는 면에서 요즘 자꾸 손이 간다. 경험하고, 이해하고, 고민한 만큼 글이 소화된다. 최근엔 <퇴사 준비생의 도쿄>가 참 재미있었는데, 나는 모르는 그들의 삶의 위트와 지혜에 감탄했다.
<태도의 말들> 작가의 표현대로 ‘말랑말랑한 에세이’가 조금 지겨워질 때쯤이면, 조금 더 깊이 있는 분야별 공부를 해보고 싶다. ‘마케팅’ 관련 책 섭렵하기 (내 업과 관련 있으니까), ‘부동산’ 관련 책 접해보기 (남편 앞에서 나도 아는 척 대화를 좀), ‘역사’ 공부하기 (학창 시절 국사가 그렇게 재미가 없었다. 무식 탈피를 위해), ‘건축’ 관련 책 찾아보기 (김경애, 유현준 작가의 글들이 너무 좋았으므로), ‘철학’도 조금 더 공부해보기 (하루아침에 될 것 같진 않으므로 좀 장기적 카테고리), 그리고 여러 가지 심리학 관련 책도 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검사 내전>과 <미스 함무라비>, <판사 유감>으로 검사와 판사의 치열한 삶과 그들의 고민에 대해 조금이나마 듣게 되었고,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로 건축가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 대해 엿보았으며, <라틴어 수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로 교수라는 직책의 사람들 중에 존경할만한 인성과 지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만약은 없다>로 응급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보았고, <골든아워>로 이 세계는 어떤 일이 있는지 이야기 듣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제목에 ‘퇴사’가 들어간 책들을 다섯 권 주문해두고 그중 네 권을 마쳤다. 이 세상 직장인들의 고민의 결이 비슷하다는데서 위안을 받고 이런 책들이 꾸준히 인기라는 것이 현 직장인의 고담함과 닿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회사란 조직은 개개인의 이기심과 찌질함을 극대화시키는 곳 같다.
<엄마의 자존감 수업>과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을 읽고 엄마로서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조금씩 다듬어 나간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고 영화를 보는 시선을 키우며, 하나의 책이 여러 가지 영화로, 책으로, 작가로 이어지는 아주 풍부하고 즐거운 경험을 한다.
최근엔 시인들의 산문집을 두 권 연달아 보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해외에 거주하며 고국을 그리워했던 시인들이다. 아빠 같은 따뜻함과 인간적이고 솔직한 글이 매력적인 마종기 시인의 <우리 얼마나 함께>에 이어, 안타깝게도 작년에 많지 않은 나이로 암투병으로 고인이 되신 허수경 시인의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까지. 시인 외에도 의사와 고고학자로 살아온 두 시인의 이력도 다체롭고, 다른 글 스타일을 읽는 것도 즐겁다.
세줄만 적으려고 했는데 하나의 꼭지를 완성했으니, 오늘 쓰는 연습은 성공이다.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마음이 허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내게 책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여전히 나를 들여다보며 마음을 살찌우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