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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Jan 26. 2021

사업을 시작한 이유


대학을 졸업하고, 메가스터디에서  한 타임 맡은 수업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 목소리가 쏙쏙 잘 들려요”

“설명을 잘하시네요. 쉽게 이해돼요”


라는 학생들의 말을


“선생님은 이 길이 업인 거 같아요”

“선생님으로 성공할 것 같아요”


난 듣고 싶은 대로 각색해서 들어버렸다.


그렇게 나의 업은 시작 되었다.


유명 강사로 계속할 수도  있었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내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렸다. 정해진 틀 안에서 지시를 따르는 일 보단, 힘들어도 의미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었다.








사업을 왜 시작했을까?



오래전 이야기다.
난 15세였고, 우리 엄마는 41세였던 그해였다.
우리가 무슨 얘기를 했었던가?

그 얘기들을 의도적으로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하지만,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대사는
"우리 형편에"라는 건조하고 나지막한 두 마디이다.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는데 이미 내주먹은 쥐어져 있었다.


“난 스스로 선다”


그때 에스컬레이터 아래로 보였던 아빠의 처진 등과 그 나지막한 목소리를 여전히 잊지 못한다. 아빠의 좁은 등이 어린 나에게 더 작아 보였다. 그리고, 난 아직 힘이 없는데 어쩌란 거야 라는 짜증이 났었다. 그러나, 그 후 아빠와 그 얘기를 나누어 본 적은 없다. 지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쉽지 않았다.




난 영어강사에서 공부방 원장이 되었다.

남들은 직장에서 회식을 하며 동료들과 맥주 마시는 동안

난 신혼집 작은 방에 책상을 놓고 수업을 시작했다.

나의 한계를 넘는 노력을 했기에 아이들은 모였고, 돈도 꽤 벌었다. 집도 샀고, 자연스레 내 이름을 건 어학원을 오픈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인생이 이렇게 스무스하기만 하다면 정말 인생을 두 번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여러 번의 사업 확장, 연이은 인테리어 공사, 전 반 마감, 아쉬울 것이 없던 나날들.

난 경쟁이 치열한 교육사업에서 14년 동안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참 녹록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만 근사해 보일 뿐.

셀 수 없는 많은 일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참았던 것이고, 당연한 일이라 생각해 왔는데, 견디기가 어려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십 년 넘게 겪어 보니, 난 대단한 사람이나 멘탈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무딘 편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그런 성격이 사업을 할 때는 플러스 요인이 되었으리라.




원래도 난 잘 참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슬개골 탈구가 되어서 난 뛰는 데엔 젬병이었다. 가끔 통증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다 아픈 줄 알았다. 선천적인 이상이 아니라면, 어렸을 때, 슬개골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 당시 난 몰랐었다. 얼마 전부터 무릎이 시큰거려 병원을 찾았다.


" 어떻게 참았어요?"
" 원래 이 정도는 아픈 줄 알았어요"
"아이고, 원래 아픈 게 어디 있어요?”





남들이 어떻게 사업을 그렇게 오랫동안 꾸려왔냐고 물으면 운칠기삼이라고 운이 좋았다고 대답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사업에 대해 참견하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고, 무엇보다 겸손하게 보이고 싶었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나의 이력 뒤에는 누구보다 치열한 시간들이 쌓여있음을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업의 성패는 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운도 치밀한 전략과 노력치에 따라 따라온다.





그 고생한 얘기를 하고 싶다.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발바닥에 굳은살이 배길 만큼은 걸어야 한다는 것을 몰라 잠을 설치던 나였다. 이제는 사업을 시작한 사장들을 응원해주고 싶다. 내가 걸어온 차갑고 딱딱한 길 대신 좀 더 발바닥이 닿는 느낌이 좋은  길로 안내하고 싶다. 그게 인생의 2막을 시작한 나의 업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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