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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Dec 30. 2020

사업을 했던 내 친구

사회에서 만났는데도 유독 정이 가고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이는 흔한 일이 아니다. 보통 사회적 관계로 이어진 사이는 서로의 필요에 따라 만난 것어서 업무 위주로 대화가 이어지고 다소 건조하다. 또한, 여러번의 만남에도 속얘기를 털어 놓는 일은 별로 없다.







K는 그런 흔하지 않은 친구이다.

교육 사업가 모임에서 만났는데, 영어 교육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통찰에 내심 놀랐다. K는 모 프랜차이즈 영어 프로그램을 셋팅하고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 능력자였다. 통대 출신답게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효과적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았다. 본인도 국내파에다가 독학해서 통대를 입학한 친구라, 아이들이 어떤 과정과 방법대로 공부해야하는지 경험으로 체득한 상태였다. K는 영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나또한 영어학원 원장 7년차였다.



처음엔 이런 저런 학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원장으로서 어려움까지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에는 새벽 일찍 만나 세끼를 함께 먹고 헤어지는 날도 있었다. 시계를 쳐다 볼 틈도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K와의 대화는 원장이라는 짐을 내려놓고 만날 수 있는 편한 시간였다.





어느 날, 야외 카페에 둘이 앉아 있었다.

관계가 깊어지면서 우리는 아무 얘기 없이 가만히 있는 시간도 어색함이 없었다.

난 교육에 대한 K의 의견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K에겐 해외파가 아닌 독학파로 성공한 내공이 몸에 자연스레 배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잘난체처럼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질투나 비교보다는 그 사람의 모습과 말을 받아들이는 경험을 했다.





커피가 약간 식어가고 있을 때, K가 말을 꺼냈다.



“ 이번 달은 마이너스가 될 것같어. 난 열심히 했는데..”



마이너스라니 난 속으로 깜짝 놀라고, 겉으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침묵이 오래동안 이어졌다.

어설픈 위로는 오히려 상처가 된다는 것을 잘알고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려고 노력 중이었다.







K가 입을 떼기 시작했다.

숨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 어머니들을 이해 못하겠어. 어머니들의 요구사항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야. 그걸 들어 주다가는 아이들이 안좋은 방향으로 갈 것같은데 말이야. 설득을 하기도 어렵고, 상담을 하면서 어머니 푸념을 듣기도 너무 힘들어”

한숨섞인 푸념이 한참동안 계속 되었다. 상당히 오랜시간 봐왔으나, 전에는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 이럴려고 사업을 한 건 아닌데, 하루종일 수업하고, 상담하고, 아이들 자료 만들고, 어머니들의 말도 안되는 요구사항을 들어주다 보면 깜깜 할때 나가서 별보고 들어온다”

이럴려고 사업을 한게 아닌데 라는 말이 귀에 꽂혔다. K는사업을 하면 자유로울 꺼라는 생각을 했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매여서 본인의 역할을 해야하는 압박감이 심해 시작한 사업이라 했다. 지금은 더 자유롭지 못한, 출퇴근도 없는 직장인이 되어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일에 매여 있는 모습이었다.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일에 압도된 상황.





문제는 K도 나도 사업을 한지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초기엔 나 또한 혼자 일당백을 하느라 힘들었다. 원장의 역할은 정해진 것이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스스로 다 챙겨야하고, 일의 시작과 끝이 내 손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 후, 직원을 채용해서 하나하나 나의 일을 쪼개서 나누어 주었고, 그들은 나의 일을 순차적으로 가져갔다. 나의 업무는 학원에서 행해지는 일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그나마 점점 일의 양이 적어지고 있었다. 기술적인 일은 나보다 잘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나의 일은 내년 계획을 하거나 고객들의 만족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질문에 대해 항상 고민하는 일이었다.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어. 일을 나만큼 잘하는 직원이 없어. 가끔 보면 난 일하느라 밥도 못먹었는데, 직원들이 밥먹으러 나갔다 온다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 놀고 있는거 같은데, 일을 나누어 줄 시간이 난 없어. 그 일을 하다간 내 일은 엄청 밀릴껄”





“ 나만 그러는게 아니라 생각하니 위안이 들어.

주위 원장들도 그런 사람들이 많어. 다들 열심히 살지뭐”





다들 열심히 사는 거였다.

사업은 이런건가라는 회의를 가지면서도 , 혹시나 내가 여유를 가지면 안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앞만 보고 뛰는 것이다. 누가 뒤에서  쫒아 올듯이 뛰다보면, 언젠가는 나에게도 여유라는게 생기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사업을 오래하고 하지 않고는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사장의 성향에 따라 조직은 영향을 받고 변화한다. 실제 친구네 학원을 가보면 직원들은 우왕좌왕 하며 길잃은 양떼처럼 서성였다. 내가 뭘 해야하나, 원장은 너무 바쁜데, 내가 무엇을 도와줘야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들은 친구가 화가 치밀어 오를 만한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일까?







원장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잘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또한 그런 적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메타인지가 안된 원장말이다.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기 전에 직원들에게 화가 나고, 내가 힘든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내가 힘든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일만 연이어 일어나는 듯하다. 처음 시작했을 때 사업의 의미가 퇴색했다.



난 그날 어떤 얘기도 해주지 못했다.

잠깐 내 사업 얘기를 할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그녀는 오해해서 받아들일지도 몰랐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같은 그녀에게 나의 서툰 조언은 오만하게 받아들여질까 두려웠다.

그녀의 사업에도 핵심 가치가 있을 터였다. 그녀가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데, 내가 조언을 하는 건 주제넘는 일이라 생각했다.  다 변명이다. 그냥 다른 사람의 삶에 간섭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 후, 친구는 버티지 못해 폐업을 결정했다.

그날 친구 얼굴이 창백했던 날, 그렇게 운영하면 지쳐서 오래 할수 없다라고,  바로 발아래 말고, 좀더 멀리 보고 가라고 했으면 좀 더 나았을까? 친구가 좋아하는 향수 하나를 포장해서 건네주고 밥을 사며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한 자책감이 들었다. 친구는 지금까지도 알지 못했을 일이다. 복잡하게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는 내 표정과 감정에 대해 말해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몇일 전 자기는 고액 월급장이라며, 이게 딱 적성이라는 전화가 왔다. 사업을 이제까지 끌어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한 기분이라 한다. 그래도 난 참 아쉽다. 휼륭한 기술자가 사업가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지 못한게  못내 안타깝다. 기술자나 전문가로 머무르며, 그 탁월한 교육의 가치를 사업으로 실현하지 못한 그녀가 다시 도전을 해봤으면 할 정도이다.



“ 친구야, 다시 자본을 모아서 사업을 해보는건 어때?”

라고 물으니 웃으며 바로 대답이 왔다.

“ 내 적성이 아닌 걸 또하냐? 한번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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