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리의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를 읽고
당신이라는 주체는 어떤 곳에서는 숨을 쉬고 다른 어떤 곳에서는 숨이 막혀 질식한다. 그것은 내 시선에 비롯된 흠모이자 희롱이고, 당신은 어디에서든 존재할 수 있다. 여름이면 땀에 흠뻑 젖어 불쌍한 눈망울로 헥헥거리는 강아지와, 빽빽하게 머리 자란 나무들이 바람 줄기 찾아 조금이나마 몸을 젖히는 일말의 풍경이, 겨울이면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훌쩍이는 가로등과 손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등 굽은 퇴근길. 그리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첫눈의 장면이었다.
당신과 나는 부질없는 것에 대해 오래 바라보고 침묵했으며, 커피를 다 비우고도 아무런 말 없이 당신을 한 번, 그리고 당신을 메운 나머지 것들에 한 번 시선을 번갈아 던졌다. 오래 참아 뼈가 다 부서진 말은 어렵사리 입을 통해 나왔으나, 나는 막상 기다렸던 당신의 말이 들리자 대답하지 못하고 허공에 부딪치기를 반복하였다. 그것은 당신이 안에서 내뱉은 말인가 아니면 당신이 밖에서 가지고 온 말인가 얼마간 생각해 보았으나, 일찍이 그만두고 쉽게 으스러지는 첫눈의 맥없음을 관찰하였다.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눈을 뭉쳐서 고이 내 방에 두고 싶었다. 유일하게 허락된 당신과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당신의 안과 밖은 종잡을 수 없이 멀고 아득했으며, 그 경계가 모호했다.
그저 당신의 눈길이 가는 곳에 함께 따라 걸을 뿐이었다. 한겨울의 어느 날은 더욱 매섭게 우릴 가뒀고, 당신과 나는 첫눈을 함께 맞았다. 내리는 첫눈을 따라 움직이는 당신의 몸사위를 잊을 수 없다. 그날 밤만은 당신의 손을 부여잡고 어디든 끌려다닐 작정이었다. 문득 당신은 낯선 가게 앞에 쌓인 눈을 한 움큼 집어 들고는 물끄러미 나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주려니 기다렸지만 당신은 입을 열지 않았다. 손이 얼어붙어 빨개지도록 그 눈을 놓지 않았다. 순간이 멈춰있었다. 나도 얼마간 당신의 눈을 마주 보며 바보같이 서 있었으니까. 당신이 손을 펴서 내게 내밀었다. 눈이 묘한 모양으로 뭉쳐 있었다. 곧이어 당신이 말하였다.
"저기 풀풀 날리는 공중은 형식을 갖지 않았으니, 당신은 첫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