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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현 Sep 30. 2020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수초

수초는 놀이터



생계와 관련 없는 글을 일상적으로 꾸준히 쓰기란 쉽지 않다. 어느 정도 다듬어진, 최소한  번은 퇴고한 글을 독자 없이 쓰는  고역이다. 작자 , 독자 . 어떤 압박감도 의무감도 없다 보니 조금만 핑계가 생기면  쓰게 된다. 얼마  휴대전화를 바꾸고서 카메라에 엄청나게 실망을  나머지 그때부터 글쓰기가 싫어졌다. 사진이 먼저냐 글이 먼저냐 하면, 나는 물고기가 먼저인데 그랬다. 다른 이유도 있다. 요즘 나는 건강이  좋지 않다. 가뜩이나 기력도 없는데 휴대전화까지 나를 화나게 하다니! ... 얼마   신간을 하나 읽는데, 글에는 자기 삶의 정수가 담겨있어야 한다(유영만, 『책 쓰기는 애쓰기다』) 써있었다.  삶의 정수는 물고기 응가는 이틀마다 치우자, 기계가 열받게 하면 쓰지말자 뭐 이런 걸까?.... 여하간 글쓰기란 이렇듯 자기본위적인 행위다.    

이 주 전쯤 되게 당찬 포부를 안고 수반과 아주 비싼 바닥재, 수초를  샀다. 부상수초가 걷잡을  없이 자라 어항을 뒤덮어버려 아랫쪽에 심은 수초들이 뚝뚝 끊어진  계기였다. 수반도  여러 생각을 갖고서 고른 터라 독특한 모양에  비쌌다. 기다려 받았지만 정작 꾸며 기를 기력이 없었다. 생각으로는 붉은 흑사를 깔고 거기에  자갈 조금을 장식하고 미니 맹그로브 두셋과 식충식물 한둘, 물배추와 개구리밥을 키우고 싶었다. 수반을 씻고 거기에 물배추를 퍼다 옮기기까지는 했는데 더는 아무것도  했다. 사는 김에 아주 아름다운 붉은 색의 수초인 루드위지아 페렌니스도 샀는데 그냥 죄다 어항에 던져놓고 말았다.


  물생활로 알게   사람이 자신의 물고기 부부가 낳은 아기 물고기  마리를 보내주었다. 베타였다. 태어난 아이들 중에서도 특별히 예쁜 아이들이라고 말해주었다. 글을 쓰는 현재 시점에도  아기 물고기는 손가락 한마디가  되는데, 같은 어항 친구들 중에서는 카디널 테트라들과 비슷한 크기다. 처음 본항에 들어가자  아기 물고기는 혼비백산 난리였다. 여태 형제자매만 알고 살다가 전혀 다르게 생기고 커다란 물고기들이 돌아다니니 놀라 어쩔  몰랐다. 카디널 테트라들이 떼지어 다니는 것에도 구라미들의 더듬거리는 지느러미에도 가오리 비파와 안시의 얼굴에도(??) 놀랐다.  아기 물고기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숨기 바빴다. 선물 아닌 선물로 받은 아기 물고기들이지만 이때는 일도 바빴고 건강상에 문제가 생겨 집중적으로 챙기기 어려웠다.  


세마리가 루드위지아와 물배추 아래서 자고 있다



어느  아침이었다. 아무래도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서는 감정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그날도 근원 모를 침울함을 안고 눈을 떴다. 방을 나서며 흘긋  어항은  넘게 건져내고도 폭주하듯 자라는 물배추와 아무렇게나 대충 던져놓은 루드위지아 페렌니스로 수면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항 앞에서 움직임이 있으니 물배추 사이로 물이 튀었다. 수초 무더기 사이로 파닥거리는 하얀 꼬리가 보였다. 가장 먼저 왔던 베타  자매  둘이 부상수초와 루드위지아를 몸에 감고 침대 삼아 자고 있었다. 바로 곁에는 가장 마지막에  아기 물고기 둘이 유목에 기대어 있었다. 몸을 숙여 아래를 보자 바닥에  닿을  길게 내려온 물배추의 뿌리를 썬셋 구라미와 코발트 구라미가 가지고 놀고 있었다. 물고기들은 내가 아무렇게나 방치한 수초들 사이에서 마냥 즐겁고 편안해 보였다.

깨달음이라면 이상한 말이다. 엉망진창으로 방치해놓은 어항의 수초들이 물고기들에게는 놀이터가 되었고 수고 없이도 물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끔은 힘든  감정에 솔직해도, 짊어진 짐을 내려놔도 괜찮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잠깐 숨을 가다듬는 일이  좋은 일로 다가올 때도 있구나를 이렇게 눈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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