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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현 Sep 02. 2020

노란 달팽이 들여다보기

관심의 시작



오늘 거실에서 고양이가 무언가를 굴리고 있길래 늘 그렇듯 도토릴 가지고 노나 했다. "뭐 하고 있어?" 다가가 보니 고양이가 굴리고 있는 건 어항 속에서 기르던 물달팽이인 애플스네일이었다. 언제 물 밖으로 탈출한 건지, 진작 마른 데다 탈출 중 깨졌는지 패각 일부가 깨져있었다. 서둘러 고양이에게서 빼앗아 어항에 퐁당 던졌다. 죽은 건지 산 건지 알 수 없어 연신 들여다 보는데(재택근무의 장점이다) 거의 일곱 시간을 꼼짝도 않았다. 포기할 쯤, 늦은 밤 노란 달팽이는 조심스레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환호성을 질렀다.


애플스네일. 애플이라고 부르고 있다. 탈출했다가 깨진 패각을 보니 눈물이 난다.



여러 마리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내 어항에는 물고기가 아닌 친구가 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기 새우와 여느 물고기보다도 오랫동안 함께 산 애플스네일이다. 애플스네일은 물에 사는 노오란 달팽이인데, 벌써 같이 산지 1년 훌쩍 넘었다. 이 달팽이를 처음 데려온 것은 관상도 키울 목적도 아닌, 당시 창궐하던 이끼에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혼자 열심히 돌아다니며 사료 찌꺼기나 이끼를 먹다 보니 신경 쓴 적이 없었다. 있구나 정도.

무정하게 시간이 흐르고서 노란 달팽이는 처음 데려온 때의 두 배쯤 되는 크기가 됐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 한 마리의 커다란 베타와 작은 테트라 몇 마리가 살던 어항은 원주인들이 수명을 다해 떠나고 열댓 마리가 넘는 어린 물고기들이 차지 중이다. 나는 최근 뒤늦게 노란 달팽이 보살피는 데 열심이다.

이 노란 달팽이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여름 초입, 청계천 수족관 거리에 놀러 갔는데 그곳에서 본 같은 종류의 노란 달팽이들은 놀랍도록 깨끗하고 예쁜 패각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에게 "어떻게 이렇게 예쁜 껍데기를 가지고 있는 건가요?" 물었더니 건조하게 "우리에겐 상품이잖아요. 예쁜 애가 잘 팔리니까, 우리는 매일 두 번 사료를 줘요. 이 종류는 한 번 영양이 부족해서 깨진 껍데기가 되면 다시는 회복을 못 하거든요."라고 답했다. 그랬구나! 일 년을 길렀건만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정보를 찾아보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몰랐다. 집으로 돌아와 내 달팽이를 살펴 보니 물방의 달팽이들과 달랐다. 처음 왔을 때 귀엽고 매끄럽던 패각은 여기저기 줄이 가 있고 흠이 있고 색깔도 달랐다. 그때부터 각별히 달팽이를 챙겼다. 일부러 따로 먹이를 챙겨주고 했더니 새로 자라는 패각은 매끈하고 어여쁜 노란색이 됐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기뻤다.

이런 식으로 다른 친구들 사진에 늘 불쑥 찍혀있다.


달팽이를 일부러 찾아 살피기 시작하니 또 안 보였던 일상을 볼 수 있었다. 달팽이는 여느 물고기에게도 관심 없이 하루종일 부지런히 어항 벽을, 바닥을, 수초 위를 돌아다녔다. 잘 때는 고동딱지로 몸을 단단히 막고 수 시간 조용히 있는다. 이렇듯 평화만을 휘두른 것 같은 달팽인데 어느 날 발견했다. 매번 날마다 촉수가 엄청 길었다가 없다시피 짧았다 하는 것을 알았다. 이유는 얼마 뒤 알 수 있었다. 어항에는 여기저기를 쪽쪽쪽 쪼아대는 물고기들이 있는 데 그 중에도 유독 한 녀석이 달팽이의 촉수를 잘라먹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보드라운 몸체도 쪽쪽댔다. 이 놈이?! 하면서 어항 벽을 쳐도 어항이 크다보니 꼼짝도 않고, 수초용 핀셋으로 휘휘 저어 떨어뜨려놔도 곧 다시 와서 쪽쪽댔다. 밥을 줘도 쪽쪽. 쪽쪽대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이 쪽쪽대는 물고기를 어떡할까 한동안 고민에 한동안 빠져있었다. 물고기가 아무리 쪽쪽 대도 달팽이는 조금 몸을 꿈틀하기는 해도 워낙 느려 제대로 피하지 못 했다. 혼자서 씩씩거리며 또 며칠을 들여다 보는데... 이 쪽쪽이 물고기가 워낙 조그마하다 보니 달팽이의 살을 실제로 먹지는 못 한다는 것을 알았다. 촉수가 매번 있었다 없어졌다 반복하는 건 막을 수 없지만 아무튼 간에 살이 너덜너덜 뜯겨나가는 건 안심하게 됐다.

오늘 어항을 탈출해 거실 레이스를 하다 죽을 뻔 한 노란 달팽이는 지금 부지런히 어항 속 유목을 오르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일 년 동안 있는지 없는지 상관도 않았는데, 우연히 들여다 본 일로 가장 신경 쓰고 아끼는 아이가 되고 몇날며칠을 이 녀석 걱정에 끙끙댈 줄은 몰랐다. 지금은 어항 탈출 하다 깨먹은 껍데기에 걱정이 많다. 작고, 나를 알지도 못 할 이 작은 생명이 내 삶을 가득 채우는 일은 생경하고도 신기하고 또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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