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한손수레 Nov 02. 2023

아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아들, 이제 곧 3학년 되니까 학원을 다녔으면 좋겠는 데 니 생각은 어때?"

"... 안 갈래."

"진짜? 왜? 원래 좋아했던 거 아니었어?"

"나는 엄마랑 하는 게 더 좋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이의 표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봤다.


"나는 엄마랑 할래."

한번 더 확고하게 전해오는 아이의 말에 입꼬리가 숨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다른 걱정거리들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아직 우리 아이가 1학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 돌봄에 보낼 수 없게 되어 데리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30분 남짓이었기에 양해를 구하고서. 그때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아들은 히어로가 되었다.


"세현아, 저거하고 있어~"

"싫어!"


학원의 모든 아이들이 일제히 아들을 쳐다봤다. 나름 학원에서 카리쓰마로 아이들을 휘어잡는 내게 보인 아들의 태도는 아이들로서는 상상도 못 할 태도였으니까. 더군다나 나는 수업에 무척이나 예민한 스타일이다. 수업을 방해받으면 뾰족 뾰족 날이 선다.


"세현아, 엄마 지금 수업 중이잖아. 저쪽으로 가 있어."

끊임없이 내 옆으로 다가와 어수선하게 만들던 아들에게 결국 무서운 얼굴을 들이밀었다.


"치."

아이들은 예민해진 나를 신경도 쓰지 않고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우습다기보다 중2 아이들에게 초1의 그런 행동은 그저 귀여워 보였을 테지. 아니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 할 나에 대한 반항으로 대리만족했을 수도. 남자아이들은 확실히 그런 통쾌함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 계속 또 언제 오냐고 물었던 걸 보면.


그때 이후로 나는 잠시라 할지라도 학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겠다고 생각해조차도 해본 적이 없다.




"근데, 세현아 엄마랑 어떻게 공부를 해. 엄마가 학원에 있는 데."

"내가 엄마 학원으로 가면 되지."

"아니. 그건 안 될 것 같아."

"... 왜?... 그럼 집에서 하면 되잖아."

"세현이가 엄마랑 공부하려면 엄마를 선생님처럼 대해야 해. 그게 가능할까?"

"그럼, 공부할 때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거 어때?"

"그래. 근데 그것만으로는..."

"그럼?"

"선생님이 시키는 건 열심히 해야 하잖아. 그럴 수 있어?"

"응. 열심히 할 거야."

"진짜?"

"응!"

"고민을 해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물쩍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러다 언젠가 어질러진 내 책상이 보였다. 대청소는 못해도 정리 정도는 해야겠다 싶어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 무슨 종이들이 이리도 많은 건지. 그때 한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뭔가 싶어 꺼내어 보니, 예전 심리상담을 받았던 결과지였다.


'아... 나 진짜 뭐 하는 거야. 세현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엄마가 되겠다고 해놓고선.'


인간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다. 점점 밝아지고 대화가 늘어나는 세현이를 보며 어느새 초심을 잃고 있었다. 당장 남편과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나는 월. 수 수업을 정리했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의 오후시간은 온전히 아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게 공부건, 이야기건, 놀이건 뭐가 됐건.


시간이 흐르면 다시 나의 망각은 되풀이 되겠지만 신경쓰지않기로 했다. 또 다시 각오하고 시작하면 되니까. 원래 인생은 구간반복 아니겠냐고.

매거진의 이전글 셋째가 생겼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