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매번 현관문에서 전화를 하는 거야?"
"집엔 아무도 없으니까요."
첫째가 늘 친정엄마에게 전화하는 시간은 6시였다.
수업이 한창인 시간이라 나는 전화 통화도 어려운 시간.
그래서 어느 날은 엄마가 아이에게 물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엄마도, 듣는 나도 마음이 미어졌다.
엄마는 한참을 뜸 들이다 말했다.
"... 수업을 줄이는 건 어때...?"
"..."
이미 남편의 요청으로 고등부 수업을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엄마 역할은 충족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이의 귀가 시간에 맞추려면 내 직업은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초등부만 수업해도 6시라면 끽해야 하루 한 타임 혹은 두 타임의 수업이 가능하겠지. 깊은숨만 자꾸 새어 나왔다.
또 선택의 기로인 것인지. 내가 좋아하는 일 때문에 가족들에게 원치 않는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 같아 자꾸 작아졌다.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해서 내린 내 결정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나의 부재를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아이가 나의 부재를 아쉽지 않게 느낄 방법은 없을까.
거듭된 생각으로 다다른 결과는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부산에서 살던 내가 시집으로 전라도 목포까지 왔으니 나를 대신할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조차도 이곳은 신랑의 지인 밖엔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래서 신랑과 고민을 나눈 끝에 우린 새 식구를 들이기로 하였다.
신랑은 시골에서 나고 자라 집 안에서 키우는 반려견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자고로 네 발 달린 짐승은 마당에서 키우는 거지."
무논리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를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우리 아들을 구해줄 은인이야. 우린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줄 수 있는 아이야."
그렇게 나는 남편과 1년의 고민과 협의 그리고 설득 끝에 '두부'를 데려왔다.
동생도 사촌동생도 모두 여동생 밖에 없는 녀석의 남동생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남아로.
활동량이 어마무시한 첫째를 커버할 수 있도록 활동량이 있는 아이로.
셋째를 데려오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편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집에서 냄새나면 어떡하냐, 인간이 제일 잔인하다, 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은 또 어쩌냐 등등.
셋째가 생기고 9시에 출근해서 여러 업무를 보던 나는 모든 업무를 집에서 보기 시작했고 수업 시간에만 학원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우리 집 남매의 응가를 도맡아 치웠던 남편은 애들 똥은 치워도 강아지 똥은 안 되겠다더니 발과 똥꼬까지 늘 깔끔하게 닦아준다. 퇴근하면 애들보다 '두부'를 먼저 부르고. 술을 마신 날은 두부랑 밤늦게까지 수다를 떤다.
첫째는 등교할 때 자기가 돌아올 쯤엔 컴컴해서 두부가 무서울 수 있으니 불을 켜고 출근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간다. 게다가 이제는 연락을 기다리다 지친 외할머니가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다.
뭐, 둘째 딸아이는... 귀염뽀짝한 두부의 외모에 첫눈에 반했고 두부가 몸살 나지 않을까 불안할 정도로 애정을 쏟아준다.
이렇게 우리 집에 귀한 복덩이 셋째가 생겼다.
엄마가 참 고맙다, 두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