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와 취두부, 둘 다 너.

by 잔잔한손수레


집에 들어오는 순간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


'우웩. 이게 무슨 냄새야! 똥냄새잖아!'


신발을 벗는 둥 마는 둥 들어섰다.

으아, 불길한 내 예감이 적중했다.

두부가 무서울까 봐 엄마가 켜놓은 불빛 아래로

거뭇한 덩어리 몇 개가 보였다.


황급하게 가방을 집어던졌다.

걸리적거리는 외투도 함께 벗어던졌다.


거실 등을 켜니 주변이 밝아졌고 이내 내 얼굴은 어두워졌다.

으아아. 어떡해.


배변판에 얼핏 보였던 덩어리는 확실히 똥이었는 데...

어디가 모양이 찌그러진 것이, 분명 두부가 밟고 다닌 모양이다.


안방과 거실을 발을 동동 구르며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봐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얼른 엄마한테 전화해야 해!'


아차. 지난번에 엄마 몰래 폰을 하다 들켜서 뺏겼지, 참. 하필 이럴 때.


'에이, 나도 모르겠다. 숙제나 하자.'


두부는 울타리 안에서 나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두부야, 미안해. 형아가 숙제하고 놀아줄게. 나도 진짜 놀고 싶은 데 엄마한테 혼날 수도 있어.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너도 형아 마음 알지?"


두부에게 친절히 설명해 줬으니까 서운하진 않겠지?

그나저나, 숙제할 동안 아빠가 오면 좋겠다.


삑삑삑. 띠리리.


"아빠!"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내 인생 최고의 속도로 달려 나갔다. 어른들이 말하는 빛의 속도로!


"아들~ 오늘 잘 보냈어?"

"아빠 그게 아니라..."

"오빠! 나 오늘 유치원에서..."


아, 급해죽겠는 데 아빠랑 같이 들어오던 김세아가 또 끼어들었다.


"아니, 김세아! 좀 조용히 해봐! 아빠, 지금 두부가!"

"오빠 내 얘기 좀 들어봐라니까?"

"아니! 지금! 두부가! 똥을 엄청 싸고! 밟고 다녔다고! 말 좀 하자! 김세아!"


결국 또 김세아한테 소리 질러서 아빠한테 혼났다. 아니, 지금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데!


아빠는 다급하게 들어와서 두부 똥을 척척 치웠다.

나를 혼낸 아빠는 밉지만 이럴 때 보면 진짜 우리 아빠는 대단하긴 하다.


순식간에 두부 발과 똥꼬를 닦아주고는 두부 집정리까지 다 해치웠다.


"아빠, 이제 두부 풀어줘도 돼요?"


두부는 아직 어리고 우리 집이 아가인 두부에겐 커서 적응이라는 걸 해야 된다고 했다. 도대체 어디가 크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두부에겐 아무튼 큰가 보다. 그래서 두부는 울타리 안에서 키우고 종종 풀어서 함께 논다. 두부도 닦고 똥도 치웠겠다 아빠에게 두부랑 놀아도 되는지 물어봤다.


"그래, 그럼."


"와! 감사합니다! 김세아! 빨리 와, 두부 나온대!"


잔뜩 신나서 동생과 이리저리 손뼉 치며 두부를 서로 불렀다.


"윽. 아빠! 두부한테서 똥냄새나!"

동생이 소리 질렀다.

두부한테 똥냄새라니, 두부 속상하게 쟤는 생각 없이 말을 해서 문제다. 아무 냄새도... 나네... 진짜.


"아빠... 근데 진짜 나... 세아 말이 맞아. 냄새나, 두부한테"


"걔 취두부라서 그래."


"취두부? 그게 뭐예요?"


"두부인데 엄청 안 좋은 냄새나는 두부 있어. 근데 그것도 음식이야."


"에엥? 거짓말!"


"있어, 진짜. 그래서 엄마랑 아빠는 두부 냄새날 때 취두부라고 불러~"


"별명처럼?"


"응."


두부가 별명이 있다니 너무 재밌다. 이름도 별명같이 웃긴데 말이다. 그런데 냄새나는 것도 속상한데 냄새나는 별명이라니 두부가 너무 서운할 것 같다.


나라도 좋은 별명 지어주고 싶은 데...

아! 생각났다!


"아빠! 봐봐, 아빠 김종균 엄마 백지하 나 김세현 세아는 김세아. 그러니까 두부도 김두부야. 근데 냄새날 때는 별명이 취두부니까 냄새 안 날 때 두부 별명은 순두부야. 어때? 두부 엄청 순하잖아! 몸도 몽글몽글 닮았고!"


"오~ 좋은 데?"


"엄마 오면 두부 목욕시켜 달라 해서 취두부에서 순두부로 변신시켜야지!"


두부는 순한 내 막냇동생이다.

오늘은 취두부처럼 진짜 토할 것 같은 냄새가 나긴 했지만 나는 두부가 속상하지 않게 순두부라고 더 자주 불러주고 싶다.

엄마, 빨리 와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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