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도 싸나이네, 싸나이.

예방접종 따위.

by 잔잔한손수레


"아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한참 기다렸어! 얼른 가방 놔두고 나와."

"어디 가게?"


우리 엄마는 항상 바쁘다. 나는 미술학원이랑 태권도를 갔다가 6시가 되어서야 집에 온다. 늘 아무도 없는 빈 집이었다. 그래서 들어오기 싫었었지.


요즘에는 엄마가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학원을 가지 않는다. 나와 함께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도 월요일과 수요일은 학원을 가지 않게 되었다. 학교 끝나고 곧장 집으로 오다니. 거기다 집에 들어오면 엄마가 날 기다리고 있다.


그 설렘을 엄마는 모르나 보다. 내가 얼마나 뛰어왔는 데. 늦게 왔다니.


"엄마, 두부랑 같이 가?"

"응, 두부 예방접종 맞으러 갈려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엄마는 두부에게 목줄을 채우느라 실랑이 중이었다.


두부 병원 가려고 엄마가 마음 급했나 보네. 엄마는 성격이 급하니까. 그렇게 춥진 않은 것 같은데, 털이 짧은 두부는 추울 거라며 옷도 입혔다. 너무 귀여운 두부. 옷을 입히니 더 귀여웠다. 노란 옷이, 딱 계란물 입힌 두부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차에 올라탔다. 엄마는 두부를 잘 잡아달라며 조심조심 차를 운전했다. 이 녀석은 진짜 쑥쑥 큰다. 벌써 엄청 무겁다. 필사적으로 두부를 끌어안고 있었는 데, 버둥거리던 두부가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얌전히 있어줘서 다행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이 거리면 그냥 걸어왔어도 됐겠는 데 왜 차를 타고 온 거지. 고작 길 두세 개만 건너면 되는 곳인데... 엄마도 참.


동물병원으로 들어섰더니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 고양이가 무섭게 생겼네. 엄청 크다. 특히 쟤는 저 정도 크기면 호랑이 아니야? 이쪽으로 오지 마.


나도 모르게 엄마 뒤로 숨었다.


"쟤가 두부보다 순해, 걱정하지 마."

"걱정 안 해! 고양이 안 무서워. 그냥 두부를 지키려고."


귀신같이 엄마는 내 마음을 읽는 다. 자존심 상하게. 하나도 안 무섭거든!? 두부가 무서울까 봐 그런 거라고요, 엄마.


나랑 김세아가 병원 가면 귀 삐를 하고 나서 체중계에 올라선다. 두부는 귀 삐는 하지 않고 그냥 체중계에 올라섰다. 가만히 있지 않는 두부를 보니, 못 말린다. 역시 애기구만. 이거 무서운 거 아니야, 두부야.


"가만있어, 두부!!"

"두부, 앉아!"


엄마랑 나랑 두부를 타이르고 앉아도 시키면서 그렇게 체중을 쟀다.


"4.5kg네요. 쑥쑥 아주 잘 크네. 그 사이 벌써 1kg이나 늘어서 왔네."

간호사 선생님이 두부를 엄청 쓰다듬으면서 이야기했다. 역시 우리 두부는 어딜 가나 인기만점이다.


쑥쑥 잘 크고 있다니 자랑스럽네. 너 대단하다, 두부야. 그래도 형아는 지금 22kg이야. 너랑은 차원이 다르지? 형아가 22kg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한 줄 알아? 어서 형만큼 더 크도록 해.


두부는 매번 집에만 있다가 나오니까 신이 나나보다. 여기저기 다 돌아다니고 정말. 두부한테 끌려다니느라 힘들었다. 옆에 강아지한테도 가고 다른 아줌마한테도 가고. 그런데 너 내가 주인인 거는 알고 있는 거지? 낯선 사람 따라가고 그럼 안된다.


잠시 뒤, 안에서 두부 이름을 불렀다.


"세현아, 이제 엄마가 안을게."

"내가 안을래."

"두부 주사 맞아야 해서 잡아줘야 해."

"알겠어요."


얼마 전에 독감 주사를 맞았다. 진짜 깜짝 놀랐다. 나는 평소에 열이 나면 수액을 자주 맞아서 주사는 무서워하지 않는 다. 그래서 항상 엄마 앞에서 멋있는 모습을 보여줬는 데, 독감 주사에서는 멋있는 모습 보여주는 것을 실패했다. 너무 아팠다. 주사를 다 맞고 나서도 아팠고 다음날까지도 팔을 못 쓰는 줄 알았다.


두부도 그런 예방주사를 맞는 거라고 엄마가 얘기했는 데... 두부는 아직 아가인데, 괜찮을 까?


"엄마, 두부도 아프면 울어요?"

"그러게. 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세현이가 꼬옥 안아줘."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사 선생님에게 인사했다.


"선생님, 두부 안 아프게 놔주세요."

"알겠어, 너도 주사 잘 맞냐?"

"전 주사 엄청 잘 맞아요. 전 싸나이니까요."

"오~ 대단하네."


의사 선생님은 나와 이야기하면서 두부 엉덩이를 바늘로 두 번이나 찔렀다. 두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와 엄마는 서로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다 맞은 거예요?"

"응~ 두부도 형아 닮아서 씩씩하네."

"제 동생이니까요. 잘했어, 두부! 역시 넌 내 동생이야."


엄마와 의사 선생님은 기분이 좋은 지 내내 웃으셨다. 나도 두부가 자랑스러워서 기분이 좋아졌다.


의사 선생님이 주사를 맞았으니 오늘은 두부가 푹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다고 했다. 김세아가 두부를 만지지 못하게 내가 두부 집 앞을 지키고 있어야겠다.


집에 두부를 눕히고 엄마랑 앉아서 작전 회의를 했다.


"엄마, 김세아가 오면 거실로 못 오게 하는 건 어떨까?"

"그냥 두부 주사 맞아서 쉬어야 된다고 말해주면 되지 않을 까?"

"아니, 말도 해주고. 말해도 두부 자꾸 만질 거 같은 데."

"그때는 또 말해주면 되지."

"근데, 두부 오늘 주사 진짜 잘 맞더라. 그쵸?"

"응~ 아까 의사 선생님도 그랬잖아. 형아 닮아서 그런가 봐. 엄마도 깜짝 놀랐어."

"두부도 싸나이네, 싸나이. 그쵸?"


어렸을 때 주사 맞던 내게 '싸나이'라 말해줬던 외할아버지 말투가 생각났다.

"이야, 세현이도 싸나이네."


두부야, 너도 내가 싸나이로 인정한다.

두부도 싸나이네, 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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