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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Nov 14. 2023

순대+맥주+소주=행복완성


남편과 연애하기 전 나는 망설였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다. 정확하게는 싫어한다.


그에 반해 남편은 일주일에 6번은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고 한 번 마실 때 못해도 5병씩은 마시는 애주가였다.


술 냄새도 맡기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와의 연애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결혼을 전제로는 더욱이.


그에게 조건처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다 나온 술 얘기에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말았다.


그는 그렇게 두어 달을, 아니 내가 안주와 함께 먹는다면 적당히 한두 병선에서는 괜찮다고 할 때까지 술을 먹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는 악착같이 참은 거겠지.


그런 그의 모습에 감동했고 그가 적어도 내 속을 썩일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으로 그와 결혼했다.


나의 판단이 무색하게도 신혼 때 술 때문에 참 무던히도 싸웠다.


저마다 '적당히'의 기준이 그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애매한 표현법은 오히려 전쟁의 불씨를 낳는다는 걸 배웠다.


수많은 전투 끝에 한 병의 약속을 쟁취했다.


그렇게 두 자녀를 낳고 남편은 내가 술을 안 마시는 재미없음을 토로했다.


이 남자는 얼마나 더 뻔뻔해지려는 걸까. 술을 끊기로 했던 그에게 '적당히'의 아량을 베풀었더니.

그 적당히의 기준 때문에 무수히 전쟁을 치렀고 한 병의 합의를 겨우 봤더니. 이젠, 나더러 안 마시니 재미없다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따져 물었다.


"나는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랬잖아. 같이 술 마셔 주는 여자가 좋으면 나랑 결혼하면 안 되는 거지. 여보가 술 안 마시기로 하고서 나한테 술 안 마셔서 재미없다고? 나 술 안 마시는 거 모르고 결혼했어? 여보가 결혼 전, 후가 바뀐 거지. 이게 속인 거랑 뭐가 달라? 술, 내가 싫어하면 안 먹는 다했잖아."


"... 속인 게 아니라 너한테 맞춰준 거지."


"그러니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결혼한 거잖아.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겠다, 없겠다 판단의 근거를 그 사람의 행동에 두는 거잖아. 여보가 변한 거지."


"... 미안해. 그런데 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언제까지 내가 맞춰? 언제까지 나만 맞춰?"


그때 내 머릿속에서 뎅 하고 종이 울렸었다. 남편의 말이 정확하게 내 머릿속에 와 꽂혔다.


자기주장이 강한 나. 말주변이 없어 열 번은 속으로 삭이고서 겨우 한두 마디 하는 남편. 분명 남편이 내게 맞춰왔을 것이 확실하다. 나는 그의 노력을 보지 못하고 내 얘기만 하고 있었던 거겠지. 내 기준에서.


그날 이후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내가 어떤 걸 어려워하는지 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남편과 달리 나는 가늠만 할 뿐이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고 남편에게 부탁했다. 나는 내 마음에 안 드는 건 다 거절하면서.


남편을 비로소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몸이 고된 일을 하는 그가 퇴근하면 집에 들어오기도 전에 어린이집에서 둘째를 데려온다. 그리고 집에 홀로 있는 첫째와 조우하여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웠다. 그 덕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노력해서 쌓아 올리는 것들이다. 하지만 분명 그의 서포트 덕분에 가능하다.


남편이 마흔을 바라보자 생각이 많아졌다. 말수가 더 줄었고 무엇보다 웃음이 많이 줄었다. 예전에 받았던 심리상담에서 내가 가부장적 가장의 형태고 남편이 그 아내의 형태라는 말에 웃으며 장난쳤는 데 점점 걱정스러웠다.


언젠가 캠핑을 갔을 때였다. 그에게 물었다.


"여보야, 여보는 언제 행복해?"

"..."


한참을 생각하던 그가 앞에 놓인 술잔을 집으며 말했다.


"그냥. 이 정도면 충분해."


나는 내 행복을 그렇게 쫓으면서, 나의 인생과 보람을 그렇게 찾아다니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밟고 서있었다. 사실은 나를 올려주는 그 덕분에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거 였는 데...


오늘 아침 실없이 남편욕을 하다 생각에 잠겼다. 그는 나로 인해 많은 걸 인내하는 사람이다. 타인에겐 당신의 인내와 성숙함에 경의를 표하면서 정작 나를 인내하는 그에겐 따뜻한 눈빛 하나 주지 못한 듯하다.


퇴근길에 늦은 시간이지만 순대를 샀다. 소주도.

집에 있는 맥주까지 곁들여 그의 행복을 완성한다.


"여보야, 나도 한 잔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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