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막창이랑 동태찌개 해놨는 데, 먹으러 올래?"
금요일이면 평소 바쁜 척하는 며느리를 위해 시어머니가 간간히 저녁초대를 해주신다. 오늘도 감사한 어머님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아이들과 남편, 나. 우리 네 식구는 차로 20분 정도 걸려 시댁에 도착했다.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에 참 죄송하고도 감사했다. 시댁에선 두 그릇이 우리들만의 국룰이다. 그간의 다이어트는 접어두고 정신없이 먹고 또 먹었다.
남편은 막창을 앞에 두고서 외면할 수 없었는지 초록병을 꺼내왔다.
"나, 한 병 먹어도 돼?"
"먹어. 내가 운전하께."
내가 대신 운전을 해야 하니 남편이 물어봤다. 그가 보기에도 오늘 나는 피곤해 보였나 보다.
그렇게 웃고 즐기며 배가 볼록해질 때까지 죄다 먹어치웠다. 집에 조금이라도 일찍가라시는 어머님을 뒷마무리라도 내가 하겠다며 부엌에서 한사코 밀어냈다. 나도 양심이 있지. 그런데 어쩌면 그때 우린 나섰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부엌을 깔끔하게 치운 뒤에야 우리는 시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서둘러 차에 탔다. 평소 급한 성격인 나는 운전을 느긋하게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천천히 운전했다. 내가 피로감이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름의 주의였다고나 할까.
그렇게 반을 달렸다. 직진을 해서 갈까, 좌회전을 해서 갈까. 어느 쪽으로 가도 비슷한 갈림길에 들어서서 조금 덜 큰 도로인 좌측으로 선택했다. 그때 나는 불빛이 좀 더 적었으면 했다. 밤의 화려한 불빛들이 자극적이라고 느끼던 차였으니까.
얼마 가지 않아 신호가 주황불이다.
어... 이거 가야 되나 멈춰야 되나... 참 애매하던 차에 나는 멈췄다. 조금 거친 브레이크였다.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고 비상등도 켰다.
"신호가 애매했어. 괜찮아?"
남편에게 19금 장난치며 남편의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나는 괜찮아, 여보도 괜찮아?"
웃으며 대답하던 남편이 내쪽으로 손을 뻗으려던 찰나,
쾅!
엄청난 굉음과 동시에 날 바라보고 있던 남편의 몸이 튕겨져 나갈 듯하다 안전벨트에 묶여 돌아왔다.
반사적으로 뒤로 돌아봤다.
"세현이, 세아 괜찮아?"
2초간의 멍 때림 뒤 둘째가 울기 시작했다. 우는 데 왜 다행이라 생각이 든 걸까.
"세현아, 대답해."
"응. 무슨 일인 거야."
잔뜩 긴장한 아이의 대답이 들려왔다.
"여보, 괜찮아?"
남편을 바라보니 남편은 괜찮다며 차에서 내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둘째 옆문을 열고서 차분하게 달랬다.
나도 내렸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생애 처음 겪어본 교통사고였다. 뒤에서도 운전자 쪽을 강하게 들이받았고 운전석 뒤에 앉아있던 첫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쿵쾅쿵쾅.
첫째 아이 쪽 문은 열 수 없어 보였다. 운전석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세현아. 조금이라도 이상한 거나 불편한 거 있으면 이야기해 줘. 알겠지?"
"... 응."
다시 차를 살피려니 상대방운전석에서 사람이 왔다. 엄마뻘의 여성분이 나보다 더 작고 왜소했다.
"아이고,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진짜. 괜찮으신가요? 남편 분하고 두 분 타고 계신 거예요?"
"아뇨, 뒤에 아이들도 있어요."
떨리는 그녀의 음성에 돌아보니 우리만큼 놀란 듯 잔뜩 어깨가 움츠러들어있었다. 코 끝과 눈가가 붉었다. 상대방차는 에어백도 터져있었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자 차만 살폈다.
"정말 죄송해요. 아이들은 괜찮은 가요? 일단 보험접수는 바로 했어요. 정말 정말 죄송해요."
그녀도 지금 얼마나 무서울까. 혼자 떨고 있는 그녀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차를 보던 나는 의아했다. 우린 1차선에서 신호대기였는 데 왜 이 차는 우리 차의 좌측 뒷면을 박았을까. 어떻게 저렇게 박았을까. 차 겉만 찌그러진 게 아니라 속의 부품까지도 다 박살이 나있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달래고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술을 먹었어도 나보다 나은 사람.
"지금은 저도 어찌 된 건지 경황이 없어서... 어떻게 된 건가요?"
"제 잘못입니다. 제가 잘못해서, 제가 차를 못 봤어요."
자세한 설명보다는 사과를 하는 그녀에게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저분도 얼른 남편이든 누군가 와서 도와줬으면 싶었을 뿐.
비가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운전석에 앉아 기다리길 십여분. 상대편 보험회사 담당자가 왔다.
"괜찮으세요? 아이들 많이 놀랬죠? 괜찮나요? 저는 저쪽 차 보험사에서 왔어요. 신호대기 중에 못 보고 박았다고 다 인정하셨고 해서 다 보험 처리될 거예요. 렌트카도 그렇고. 그러니까 그런 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우선 놀라셨을 것 같아서요."
"네, 감사합니다."
자동차 쪽에서 일하는 남편도 여기저기 전화하고 있던 상황인지라 아이들과 차분하게 차에 앉아 기다렸다.
진정된 둘째는 연신 유치원에 가서 저 할머니가 잘못해서 우리 차 박은 거 다 이른다고 씩씩거렸다. 할머니가 밤이라 잘 안 보여서 그런 거 일 수 있다고 계속 계속 사과하셨으니까 화내지 말고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진정시켰다.
어쨌든 남편 지인의 레카차가 왔고 우린 남편의 로망이었던 카니발 하이리무진을 거리에 홀로 내버려 둔 채 레카차로 귀가했다.
길에서는 아이들밖에 걱정이 안 됐는데 집에 오니 긴장이 풀린 건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음주운전은 아닌 것 같은 데... 저 정도로 박은 거면 속도가 빨랐던 걸까. 우리 차가 안 보일 정도로 작은 차도 아니고 색깔도 흰색인데...
근데, 저 차... 하아... 저게 수리가 가능하긴 한 걸까.
긴장이 풀린 건지, 내 고질병인지, 교통사고 후유증인지 모를 두통과 승모근의 뻐근함이 찾아왔다.
오늘은 놀랐을 아이들과 아이들이 옆에 없으면 불안할 것 같은 내 마음을 위해 가족 다 같이 자기로 했다.
다 같이 병원을 한동안 다닐 계획이다.
남편이 주황불일때 애매하면 차라리 빨리 지나가야 된다 했었는 데, 이래서 일까.
근데, 그러기엔 텀이 너무 길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