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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Nov 21. 2023

넘어진김에 냅다 누워버리자.

오히려 좋아.


교통사고가 나고서 이틀째, 부하가 치밀었다.


주말을 보내고서 일하러 가야 된다는 남편에게 정색하고 화를 냈다. 나이 들어 당신 골병들면 그게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하는 것임을 왜 모르냐며 쉴 새 없이 폭격했다. 왜 월급 받는 당신이 그렇게 회사에 몸 바치냐고. 교통사고가 난 직원에게 쉬는 걸로 눈치 주는 회사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때려치워라고. 나는 하루하루가 수입으로 연결되는 데, 가더라도 내가 가는 게 맞지 않냐며. 그럼에도 나는 병원에 있는 데 조용히 치료나 받으라고.


나의 성화에 남편은 화요일 오전에는 퇴원해서 오후 출근을 하겠다고 눈치 보며 으름장을 놨다.


리 남편 같은 직원이 있음 회사가 아주 쑥쑥 크겠다 싶다. 월급 받는 사람 중에 꼼수 쓰는 사람도 그리 많다던데. 집에서만 여우다, 왜 회사에서 곰이 되는 거냐.


아이들도 문제네. 한방병원은 미취학인 둘째의 경우 3일밖에 입원이 안 된다고 한다. 아이가 아프지 않다면 굳이 입원할 필요 없지, 암. 근데 엄마 입장에선 다르다. 온 식구가 입원해 있는 상황에서 쟬 어디다 맡기나 그래... 오빠 하는 거 다 똑같이 따라 하는 녀석인데. 결국 울고 불고 떼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화내서 유치원을 보냈다. 온 가족이 병원에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자기 혼자만 유치원에 간다며 마지막까지도 아이는 울고 서운함을 토로하며 갔다.


아이의 수학놀이터 선생님이 토요일에 보강이 가능한지 묻는 문자에 또 생각이 많아졌다. 하필 이번 토요일은 큰아이 한자급수 시험이 있는 날. 더불어 공주에 결혼식이 있다며 도움을 청하신 시부모님을 모셔야 한다. 아이는 남편에게 토스하고 시부모님 모시고 공주를 다녀와야 한다.


아오. 이번 교통사고는 내 잘못이 일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공포심이 생겼다. '내가 아무리 잘하더라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는 형식적인 이야기를 온몸으로 느껴서인지 미묘한 불안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중등부 곧 시험인데.

소위말하는 시험대비기간인데 결국 휴원 안내를 했다.


교통사고로 인한 휴원안내에 반발할 학생과 학부모님은 없다. 그냥 내가 죄스럽고 마음에 안 드는 것뿐. 내가 계획했던 수업 계획은 모두 어그러진다. 아이들의 학습흐름을 중요시하는 나인지라 아이들의 돌발적 휴식이 내겐 달갑지도 않고. 수업 계획에 수정 및 보완이 필요해졌다.


큰 아이 학교와 학원에도 전화를 돌려야 한다. 담임선생님뿐만 아니라 돌봄 선생님 방과 후 선생님까지. 미술학원과 태권도 학원까지 전화를 돌리다 보니 진이 빠진다.


출간진행 중인 공저 작가팀에는 아직 말을 아꼈다. 퇴고 진행 중인데 아직 마감기한이 조금 남아있으니. 개인 출간 준비 중인 원고는... 하... 이쯤 오니 다시 머리가 지끈 거린다.


진짜 잘 쓰고 싶은 데 그간 이런저런 일들에 치여 그것만 마무리되면 제대로 잡고 만족스러운 퇴고가 될 때까지 에너지를 쏟을 예정이었는 데, 이제 시작하려던 찰나의 사고에 맥이 빠졌다.


새벽 5시의 경제 스터디도, 5시 30분의 경제독서모임도. 입시스터디도. 수학스터디도.

아들과 만든 블로그는 완전히 스톱.

내 일정 하나하나가 다 박살 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고작 4개월 남짓된 두부는 영문도 모른 채 가족 모두 오지 않는 컴컴한 집을 홀로 지키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속이 천불이 터졌다.


남편이 아침저녁으로 밥 주고 똥을 치우러 외출해서 가지만 고작 30분남짓인데 얼마나 불안할까. 아오, 증말...


남편이 차 사진을 보여주고 이래저래 수리하고 차 관련 얘기를 꺼낼 때는 반도 못 알아듣는 다. 하지만 정확한 핵심은 안다. 어떻게 고쳐도 예전처럼 멀쩡한 차가 아닐 거라는 것. 그리고 그 정도가 그저 최선일뿐이라는 것.


왜 우리는 뒤통수를 맞은 걸까. 그에 대한 피해가 말끔하게 지워질 수는 없는 걸까.


자꾸 내 목소리는 커졌고 날카로워졌다.


"여보, 예민한 거 알겠는 데 이제 좀 그만하지?"

남편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

"여보 이 참에 아무 생각 하지말고 조금 쉬어."


하긴.

매번 왔다 갔다 하는 남편이 더 번거롭고 힘들었겠지.

상대편 차량 과실 100프로니까 건강 점검받는 기회라 생각해 두자. 아들의 오른쪽 발목에서 교통사고와 무관한 이상 증상도 실제로 발견했고. 차와 남편 회사는 남편을 믿고 맡겨두자. 아들과 24시간 같이 며칠이나 비비적거리는 게 흔한 기회가 아니다. 블로그보다 이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 티비제어력까지 생긴다면... 아, 이건 욕심이군. 뭐, 둘째도 울며 갔지만 친구들이 또 그 빈자릴 메워 즐거운 하루가 되겠지. 그렇게 성장해갈 거고. 두부만 제일 짠하네.


두부야. 좀만 기다려. 이 시간들이 지나면 더 많이 놀아주고 안아줄게.


내 일은... 뭐, 이후의 내가 또 알아서 하겠지.

충분히 쉬었을 나를 지금의 나보다 더 믿어보자.


무엇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려면 그만큼 준비기간도 필요한 법이지. 지금의 내 휴식기는 내가 날아오를 높이에 비례한다고 생각하자.


잘 날아오르기 위해 충분히 쉬자.


에라 모르겠다.

넘어진 김에 그냥 냅다 누워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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