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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Nov 22. 2023

아이가 없어졌다.

문자가 왔다.


'어머님, 오늘부터 다시 나오는 거 맞죠? 차량은 도착했는 데 세현이가 나오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어요.'


어제 남편과 이야기할 때 느낌이 쎄하더라니.


목과 허리에 꽂혀있는 침 때문에 힘겹게 한 글자씩 써 내려갔다.


'죄송해요. 차량은 출발시키셔도 돼요. 아이와 연락해 보겠습니다.'


며칠 전 교통사고로 인해 나는 한방병원에 입원 중이다. 아이들과 입원하니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이를 눈치챈 건지 남편이 아이들과 먼저 퇴원하겠다며 하루라도 푹 쉬고 퇴원하길 권했다. 걱정이 한가득이었지만 내심 기뻤다.


아들의 일정에 대해 남편과 상의하고 학원선생님께 미리 일러두었다. 아들에게도.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하지. 내가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뭔가 돌발상황이 발생할 것 같았다고나 할까.


거듭해서 전화를 걸어도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침구실에서 등짝을 위아래로 반은 드러내놓고 엎드려서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하나에도 침에 잡혀있는 혈이 저릿저릿했다.


'이노무 시키...'


결국, 남편에게 전화했다.


"여보, 바쁘지? 세현이가 미술차 타러 안 나왔대. 나 지금 침 맞는 중인데 전화를 해도 안 받아."

"알겠어. 내가 해볼게. 일단 침 다 맞고 전화해."


'이거 혈 잘못해서 낫기는커녕 더 아픈 거 아니가.'

아이의 무소식이 괘씸했고 내 몸이 걱정됐다.


꽂혀있던 침을 다 제거하자마자 부리나케 병실로 올라왔다.


"여보, 세현이 전화됐어?"

"아니. 안 받더라."

"알겠어."


전화를 황급히 끊고서 미술선생님께 문자를 남겼다.


'선생님, 오늘은 세현이가 미술을 못 갈듯해요. 죄송합니다.'


다시 태권도 사범님께 전화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혹시 세현이 왔나요?"

"아니요? 아직 차 태우는 시간이 아니에요."

"아, 세현이가 미술학원에 안 왔다 연락이 와서 혹시 태권도로 갔나 하고 전화드렸어요. 혹시라도 세현이 오면 전화 좀 주시겠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어머님 몸 관리 하셔야 할 텐데, 오면 바로 전화드리겠습니다."


다시 학교 돌봄 선생님께 문자를 드렸다.


'선생님, 세현이 귀가 문자가 안 왔는 데 혹시 아직 돌봄에 있을까요?'

'아뇨, 오늘은 세현이가 아예 안 왔어요. 그래서 아직 병원에 있는 줄 알았네요.'

'아... 오늘부터 학교를 나갔거든요.'

'제가 아이들에게도 물어보고 주변을 좀 찾아볼게요.'


내가 가장 많이 의지하는 돌봄 쌤은 늘 아이들의 일에 발 벗고 나서주신다. 참 감사하고도 죄송스럽다.


벌써 시간이 5시가 넘어가도록 연락이 되지 않는 아이에 화가 났다. 일부러 전화를 안 받고 있으리라. 아이의 모든 선생님들과의 연락에 너무나도 죄송했고 그만큼 나는 흥분하고 있었다.


도대체 몇 명을 걱정시키는 거야. 전화도 안 받으니 폰을 없애버려야지. 뭐 하러 폰을 들고 다니는 거야.


아이의 키즈앱에서 위치추적을 눌렀다.


이 앱은 진짜 쓰레기다. 이게 뭐야. 대체 왜 안 되는 거야.


아이가 학원을 다 돌고 집으로 귀가하는 시간이 6시다.

 이제까지 아이가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학원차량을 놓치더라도 4시 안에는 연락이 왔었다. 5시 50분이 되도록 연락도 되지 않는 상황이 되자 조금씩 불안함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의 폰에 깔려있는 키즈앱에서의 위치추적이 제 기능을 못하자 나쁜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그간의 범죄기사의 타이틀이 떠오른다던가, 흉악한 범죄를 다루는 티비프로라던가.


난 왜 그리도 추리물을 좋아한 거야. 뭐 좋은 일이라고.


어떻게 훈육해야 할까, 어떻게 대처해야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나는 어느새 뭐가 문제인 것일까로 바뀌었다.


그 와중에 병원에 있는 며느리 밥 먹이겠다고 시부모님들이 전화를 하셨다. 결국 병원복차림으로 시부모님 차를 타고서 아파트로 향했다.


눈에 아파트가 들어오기 시작할 즈음 전화가 걸려왔다.


사랑하는 아들


"여보세요."

"엄마, 오늘 전화 못 받은 거 정말 정말 미안해요. 전화 온 지 몰랐어요."


천연덕스러운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디지게 혼내서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다던 각오와 아직 스스로 통제되지 않는 아이이기에 온화하게 설명해 주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머릿속 이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길게 말하지 않고 우선 아이와 만났다.


남편도 퇴근길에 둘째를 데려왔고 어머님 아버님을 모시고 병원 옆 식당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더 친한 척 말 붙이는 아들은 참 뺀질뺀질했다.


나의 부재로 감정적 결핍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쟨 아무것도 모르는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을 빠지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나는 생각하고 컸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던 걸까.


이 아이가 지금부터 그런 행동패턴을 가지게 된다면 '규칙'이라는 걸 배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중. 고등생이 되면 스스로의 도덕적 잣대로 행동해야 하는 데...


혼란이 혼란을 낳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놀고 싶으면 차라리 엄마한테 얘길 했어야지.

이렇게 말을 할까 하다가 진짜 아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십중팔구 나는 '그럼 학원시간 전까지만 노는 거야.'라고 선을 그었겠지. 그럼 애초에 그래서 전화를 받지 않았던 걸까. 엄마는 설득이 되는 상대가 아니기에.


후우. 그럼 앞으로는 아이가 오늘은 정말 놀고 싶다 할 때 그걸 받아줄 가능성을 열어놔야 하는 데, 그게 될까.


잠깐. 학원을 내가 다니랬나, 지가 미술이랑 태권도 다니고 싶다 해서 보내준 거잖아. 아니 그럴 거면 그냥 학원 다니지 말고 놀라고 할까.


학원은 빠지면 안 되는 거잖아. 근데 내가 지금 쉬는 것처럼 쟤도 잠깐 쉬어도 괜찮아가 필요할 수 있잖아.


일관성이란 참 어렵다. 아이의 심리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데 저 아이는 아직 너무 어리다. 내가 주로 지도하던 중고생과는 다름을 인지해야 하는 데 내가 내리는 해결방식은 늘 큰 아이들의 관점에 맞춰있어 문제다.


어쩌면 좀 더 단호하게 규칙을 확립해야 할지도.

어쩌면 좀 더 포근하게 엄마의 따뜻함으로 기다려야 할지도.


생각이 많아져 아이의 말에 대답이 줄어들었다. 섣불리 뱉기보다 정확한 방향성을 찾고 대처하고 싶었다.


그런 내 태도에 아이는 더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엄마. 오늘은 진짜 제가 미안해요. 이제 안 그럴게요."


이게 한두 번이어야지. 그때 어머님이 고개를 돌리고 웃는 모습이 보였다.


아... 이거 조금 떨어져서 보면 귀여운 아이의 실수나 그리 큰 문제는 아닌 거구나. 아이의 성장 과정의 일부정도일까.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내 아이가 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그건 바라면 안 되는 행동이다. 남편이 아직도 술을 마시는 것처럼.


이 또한 이 아이의 성장 과정 중 한 부분인 거라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기다려주자.

나는 아이에게 바라지 않기로 했다.

너의 인생은 니가 만들어 가는 거니까.

학원에 좀 빠지면 어때. 그래서 니가 불성실해진다면 그에 대한 대가나 책임도 니가 지는 거지, 뭐.

지금 니가 엄마 눈치를 열심히 살피는 것처럼.


엄마는 네게 조언만 해줄게.


"오늘처럼 전화를 안 받거나하면 다른 사람이 걱정해. 그리고 걱정한 만큼 서운한 마음이 생겨. 엄마와 너의 모든 선생님이 널 걱정했어. 그리고 지금은 서운한 거야. 다시는 그런 행동은 안 했으면 좋겠어."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시부모님은 댁으로.

나만 병원에 덩그러니 남기고 다들 돌아갔다.


홀로 병실에 있으니 분명 정리를 다 했음에도 오늘의 일과가 머릿속을 헤집는 다.


아오. 이제 그만 생각해. 잘했어.

나는 아이의 선생님이 아니고 엄마야.

따뜻한 엄마가 되기로 했잖아.

욕심부리지 말고 꼭 쥐고 가기로 한 것, 그것만 보자!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여보, 낼 태권도하고 미술 전화해서 이제 세현이 안 간다고 해."


전화기 너머로 아이의 울음소리와 격앙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원점이군...

그냥 나도 어제 퇴원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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