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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Nov 25. 2023

엄마도 가끔 지친다.


지난 저녁은 시댁에서 하루 잤다.

공주에서 있을 결혼식에 시부모님을 모셔가기 위해.


교통사고로 목요일 점심에 퇴원했던 나는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썩 반갑진 않았다. 하지만 홀로 운전해서 대전 세미나나 서울 세미나를 다니는 건 가족이 다 아는 사실이고 그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운전을 좋아하는 것조차 다들 알기에 거절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시부모님의 연세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시골분들이셔서 평소 이런 타지방으로의 이동에서는 남편과 내가 많이 도와드리는 편이다.


대한민국에 흔치 않은 시댁수저를 타고난 나로서는 감사함을 갚은 길이 이런 것 밖엔 없었기에.


역시나 금요일 저녁도 일 마치고 오는 나를 배려해 어머님이 한가득 저녁상을 차려놓으셨다.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과 버섯, 며느리에게 생선요리를 잘 못 얻어먹는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조기 구이. 그 외에도 시골 특권의 맛있는 반찬들이 한가득이었다.


맛있는 반찬을 배불리 먹었다. 역시 어머님상은 두 공기가 국룰. 식사를 마치고 토요일 한자급수시험이 있는 아들과 출근해야 하는 남편은 집으로 돌아갔다.


나와 딸아이는 따뜻한 시댁의 마룻바닥에 등을 맞대고 찜질을 즐겼다.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하다 잠자리에 들려는 데 먼저 잠든 아이의 얼굴이 붉어서 너무 더운가 싶었다. 얼굴을 살펴보며 만져보니 열이 나고 있었다.


체온계도 해열제도 없는 시댁.

12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남편에게 전화했다. 시골밤길은 내가 무서워서 운전을 꺼려한다. 남편이 달려와주길 바라며 전화했지만 미지근한 그의 반응에 어쩔 수 없이 차키를 들고 나섰다. 내  손체온계가 미열이 아님을 외치고 있었으니까.


불안에 오들오들 떨며 어느덧 우리 아파트 머리꼭대기가 보일 때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 체온계랑 해열제 챙겨서 갖고 1층으로 내려와 줘. 주차할 데 없지 않을까 싶어."

"이 시간에 들어오는 차도 없어. 그냥 앞에 잠깐 대놓고 올라왔다가."

"..."


이 남자가 잠이 덜 깼나 싶었지만 내일 출근할 그의 피곤함을 이해해 주자며 빠르게 8층을 다녀왔다.


시댁으로 돌아오는 내내 서운했다. 아이가 아플 때 아빠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은 엄마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나보다.


응어리와 해열제를 쥐고서 시댁에 돌아왔을 땐 1시였다. 할머니와 짱구를 보고 있던 딸은 해열제를 먹고 잠들었다.


어찌 잠들었나 기억나지 않는 다. 정신 차리고 보니 아침 7시였고 어머님의 누룽지를 첫 식사로 우린 분주하게 챙겼다.


8시 40분쯤 시댁을 나서서 내비를 찍었다. 2시간가량의 소요 시간을 보며 2시간 30분을 예상했는 데 그보단 낫다며 위안 삼았다.


운전해서 사십여분을 갔을 까. 그때부터다. 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과 허리 통증이 시작된 건. 교통사고 이후 나는 목. 허리. 골반의 통증과 함께하고 있다. 목요일 퇴원할 때는 그냥저냥 불편한 정도였는데 퇴원 후 수업할 때부터 확실히 힘들었다. 두 번째 수업부터 앉아있기보다 서있기를 택해야 할 정도로 통증이 느껴졌으니까.


시부모님이 미안해하실까 봐 내색 없이 운전했다.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1시간 좀 더 지나서부터는 그럴 수 없었다. 수시로 손으로 뒷목을 잡고 머리지태를 손이 도왔다. 머리가 앞으로 갑자기 떨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기에.


그러다 1시간 30분이 지나서부터였나. 공주의 표지판을 보고서부터였나. 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커피도 무거운 내 눈꺼풀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딸아이에게 노래도 시키고 그에 큰소리로 호응해 주고 과자를 쉴 새 없이 먹으며 겨우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많은 어르신들을 오랜만에 뵙고 인사했다. 한창 결혼식이 진행되는 데 밝기만 하던 딸아이가 계속 보채고 짜증내기 시작했다. 불안한 느낌에 만져본 이마는 뜨끈뜨끈했다.

아뿔싸. 체온계랑 해열제는 또 차에 두고 왔네. 이놈의 정신머리. 황급히 달려서 차에 다녀왔다. 많은 인파로 엘리베이터 이용이 어려워 3층을 계단으로 오르내렸다. 평소 운동도 안 하는 하찮은 몸뚱이지만 아이가 아플 땐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 부랴부랴 확인한 체온계는 39.2도를 깜빡이고 있었다. 해열제를 먹였다. 이럴 땐 약을 더 달라고 할 정도로 즐기는 딸아이가 참 기특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아이가 열나서 보챌 땐 먹일 수도 먹을 수도 없다. 그냥 빨리 가고 싶었지만 그건 그냥 내 마음일 뿐.


어른들의 식사가 끝자락으로 넘어갈 즈음 약효가 나타난 건지 아이는 먹을 것을 찾기 시작하고 곧잘 먹었다. 밝은 아이로 다시 돌아왔다. 그제야 나도 이것저것 아이와 같이 먹었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여유로이 즐기고 마무리인사까지 마쳤다. 어르신들과의 헤어지는 인사와 함께 돌아서자 잊고 있던 통증들이 다시 나를 두드렸다.


어서 가야겠다 싶은 마음에 올 때보다 조금 더 발에 힘이 들어갔다. 목포로 들어서서 아동병원부터 갔다. 아이와 증상이 비슷한 남편도 같이 진료받기 위해 아동병원으로 합류했다.


며칠 전부터 콧물을 흘리더니 결국 그게 화근이었다. 코 속이 많이 부었다. 아이도 남편도 약을 처방받았다.


"저녁 먹고 들어갈까?"

가족행사 후 집에 가서 밥 하기 싫은 건 대한민국 여자라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한자급수시험을 잘 봤다며 들떠있던 아들이 먹고 싶다는 대패삼겹살집으로 향했다. 분명 배가 불러 아무것도 먹기 싫었는 데 대패삼겹살을 그리 바삐 구우면서도 많이도 먹었다.


약을 처방받고도 술 마신 남편과 아이들 먼저 집에 내려주고 시부모님을 모셔다 드렸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라 집에 혼자 있었을 두부의 산책을 부탁했다. 그도 오늘 하루가 고되었는지 연신 내게 말했다.


"두부가 추워서 산책 가기 싫대."


그럴리가...개뻥.

결국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남편에게 영화를 보여주며 거실의 물건들을 하나둘 정리했다. 정리가 끝나고서 두부와 함께 가족 곁에 앉았다. 운동량이 부족했던 두부를 위해 여러 가지 놀이를 했다. 미니언즈 3은 벌써 세 번째 보는 거지만 나는 아직도 그 영화 내용을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남편에게 아이들 재우기를 부탁했다.


별별챌린지 글쓰기와 학원업무도. 다된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개야 하는 빨래도 있었다. 두부 배변판도 씻어야 했고.


남편은 아이들에게 치카하라고 하더니 지가 잠들었다.

어이가 없었다. 속 편한 남자로고.


그러다 아이들과 남편이 함께 자기로 얘기가 된 건지 모두 아들 방에 있었다. 아이들은 자는 아빠는 두고 돌아가며 양치를 했다.


나와 끝인사까지 마쳤는 데 아들이 방을 나와 말했다.


"나 그냥 엄마랑 잘래."

"엄마 지금 숙제가 많아서 안될 것 같아."

"괜찮아. 등 돌리고 자면 돼요."

"왜 그러는 데?"

"아빠 누운 데로 자니까 너무 비좁아서."


방에 가보니 남편은 세로로 누워있었다. 아들, 딸, 남편 세 명이 함께 자려면 가로로 누워야 하는 데...


아들은 아빠 옆에서 이렇게 저렇게 낑낑거리고 있었고 보다 못해 내가 남편을 깨웠다.


"여보야, 오늘 셋이 같이 자기로 한 거 아냐?"

"맞아."

"그럼 가로로 누워야 해. 세현이가 지금 비좁아서 못 눕고 있어. 벽도 차가운데. 나랑 자겠다고 왔어. 여보가 가로로 누워야 해, 얼른."


남편이 벌떡 일어났다. 그 뒤는 남편에게 맡기고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못 넣는 건 널고 있었다.


"뭐 한다고 자꾸 짜증을 내는 데! 그냥 혼자 자! 세아도 세아방 가!"


하아...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아들방으로 다급하게 갔다. 아이는 울고 있었고 눈치 보며 둘째는 자기 방으로 갔다.


"아니, 매번 애기도 아니고 뭐만 마음에 안 들면 찡찡 애기처럼. 됐어, 혼자자."

남편이 홱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아들은 서러웠는지 어깨를 거칠 게 들썩이며 마치 딸꾹질을 하듯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아니, 왜, 발로 차면서, 아빠가, 발로, 찼어."


"너 발로 차는 게 어떤 건지 아빠가 보여줘?"

격앙된 목소리로 남편이 다시 돌아왔다.


남편의 권위를 살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중재가 필요한 시점. 몸을 대각선으로. 내 등을 남편 앞으로 살짝 대고 가로막았다.


내 눈에는 쉬고 싶은 본인을 못 쉬게 한 내게 내지 못하는 짜증을 아이에게 푸는 걸로 밖에 안 보여서 진짜 화가 끓어 오르고 있었다. 자칫하다 큰 싸움이 날 것 같아 내 얼굴을 그의 얼굴에 마주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말없이 안방으로 향했고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세현아, 엄마는 세현이가 어떻게 했는지 다 알고 있어. 아빠가 지금 몸도 안 좋고 피곤하니까 힘들어서 예민해서 그래. 엄마가 다 알아. 세현이도 아빠 힘든 거 알아서 아까 일부러 엄마랑 잔다고 온 거잖아. 아빠랑 자는 거 더 좋아하는 데도. 그치. 엄마가 다 봤어. 울지 마. 아빠 오늘 많이 힘든가 보다. 엄마 숙제 빨리 끝나고 오늘은 세현이 옆에 엄마가 잘까? 그래도 되겠어? 엄마가 세현이 위로해주고 싶어서."


끅끅대던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


아이방 불을 꺼주며 나오는 데, 나도 모르게 깊은 빡침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보니 더 신경질 났다.

말없이 거실로 나와 빨래를 개는 데 자꾸 유치한 비교질을 하게 된다.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여보는 오늘 세현이 한자 시험 때문에 평소보다 근무 2시간 빼고 일찍 나왔잖아. 감기? 나는 오늘 운전 왕복 5시간 넘게 하고 아직 한 번 눕지도 못했어. 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고. 당신은 아프다면서 소주 먹을 거 먹고 맥주까지 2차로 시원하게 걸치고 애들하고 신나게 누워서 영화 봤잖아!

 

아오, 여기까지 생각이 드니 코 골고 있는 남편의 코를 깨물어버리고 싶다. 그만 생각해야겠다.


하소연하느라 시간이 더 흘러버렸네.

다했다, 다했다. 이제 학원 동영상촬영만 하면 된다.

얼른 하고 자자.


내일 일어나 봐, 아주 그냥 난 내일 죽은 척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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