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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Dec 09. 2023

수학을 재미 삼아 배우다?


아들의 게임 사랑이 참 걱정스러웠다.

지금도 걱정이고.


어릴 때 바쁘단 핑계로 책을 많이 읽어주지 못했다.

그 탓에 내가 아이에게 유일하게 가르치고 싶은 게 독서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게임과 유튜브를 사랑하는 초2 남자아이다.

아이의 엄청난 집중력을 기특해야 할까.


하나에 몰두하면 아무 소리도 못 들을 정도로 미쳐버리는 나를 많이도 닮았다. 티비나 게임을 할 때 아이의 집중력은 혀를 내두른다.


그러니 나는 더욱 걱정스럽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지렁이 게임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다른 지렁이의 몸에 부딪히지 않으며 자신의 몸길이를 키워가는 게임이었는 데 아이가 내 생각보다 요리조리 잘했다.


게임을 잘하는 아이라면 프로게이머나 게임유튜버로 성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게임에서 이 아이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리기 바빴다. (내가 게임을 좋아하기에 가능한 사고방식이었을지도.)


어쨌거나 아이가 게임을 잘 못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던 내가 보기에도 능수능란하게 잘하던 아이는 매번 랭킹  1위로 게임을 마무리했다. 그렇다고 아이의 게임에 긍정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엄마, 이거 봐. 십만팔천구백오십칠 점. 내가 1등이야!"

(사실 정확한 점수가 기억나지는 않는 다.)


아직 제대로 큰 수의 수체계를 배워본 적 없던 아이가 또박또박 만이 넘어가는 수를 읽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점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점수도 거듭해서 읽고 내게 말하기 바빴다.


"점수 엄청 높네. 근데 너 이거 잘 읽는다. 대단하네."


나의 이야기에 아이는 십이 모여 백이 되고 백이 모여 천이 되고 천이 모여 만이 되고 이후 십만백만천만억이 됨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런 걸 누가 알려줬어?"

"이거 유튜브 보면 그 사람이 그렇게 읽더라고."


아이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깜짝 놀랐다.

예전에 스타크래프트 단축키와 단어를 연결 지었던 과거가 떠올라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아이가 즐겁게 공부한다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괜스레 신났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게임을 계속 시키기엔 역시 거부감이 더 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오늘 시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가 갑자기 분수 이야기를 했다. 수학 학원은커녕 학습지도 하지 않는 아이가 분수를 이야기하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아이는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엄마, 이제 할머니집 다와가지?"

"아니. 반정도 왔을 걸. 이쯤이면 반정도지."

"아냐, 엄마. 삼분의 이 정도 왔어."

"삼분의 이? 그래, 그 정도 되겠네. 근데 너 삼분의 이가 뭔지 알아?"

"응, 세 개로 쪼갰다 치면 거기서 두 개 클리어하는 거."

"엥?"

"봐봐. 육분의 일이라는 건 여섯 단계가 있을 때 하나가 해결된 거야. 여섯 개 중에 하나란 뜻이지. 지금 할머니집까지가 세 조각이라치면 두 조각만큼  왔다는 뜻이야."

"이야. 정확한데? 너 분수를 알아?"

"이게 분수잖아. 알지!"

"어떻게 알아? 진짜 너무 궁금해서."

"유튜브에서 봤지. 백현이 게임하는 거에서 단계랑 이런 거 넘어갈 때 밑에 써져 있고 게임 단계 넘어갈 때 그런 얘기해."

"... 그런 거도 나오나 보네, 신기하다."

"나 잘하지?"

"으응."


정말 지렁이때와 비교도 안될 만큼 놀랐다.

이 아이는 흥미 요소에서 뛰어난 집중력이 있다는 걸 알았는 데 난 왜 그걸 이용할 용기가 없었을 까.


내 아이의 성향과 특징을 파악해서 학습방향을 잡아가는 건 매번 부모님들께 상담하는 내용이다. 정작 내 아이는 방치만 시켜놨다니. 부끄럽다.


이제 이 아이와의 학습은 명확해졌다.

이 아이는 수학을 재미 삼아 배워야 하는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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