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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Dec 07. 2023

시댁 제사에 늦은 워킹며느리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지 못했던 내게 처음으로 '똥강아지'라고 불러주신 분은 바로 시할머니다.


남편은 할머니와 함께 컸다.

시부모님이 시할머니를 모시고 사셨으니까.


장손인 남편은 어려서부터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남편의 친구들도 알만큼 시할머니의 남편사랑은 유난하기도 유명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처음 인사드리러 간 날부터 나를 '똥강아지' '내 강아지'라고 호칭하셨다.


정정하셨던 시할머니는 매번 내 손을 맞잡고 쓰다듬어주셨고 그렇게 이뻐해 주셨다. 결혼할 땐 할머니 당신이 끼고 계시던 두 개의 금반지를 내게 건네셨다.


나는 시할머니덕에 할머니의 애정을 짧은 시간이지만 충분히 받았다.


그런 시할머니의 제사가 오늘이다.

오늘 같은 날은 '강아지'가 절로 떠오른다.


수업이 9시 30분에 끝나자마자 시댁으로 황급히 달렸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도착하니 10시였다.


현관에 들어서자 이미 같은 시골에 계신 당숙들과 식구들은 절도하시고 식사도 끝난 상태가 보였다. 늦은 며느리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거듭 인사를 하며 신발을 벗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늦게까지 일하느라 고생했다며 얼른 밥 먹으라 챙겨주셨다. 그런데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며느리로서 어쩔 수 없는 마음인가 보다.


괜스레 부엌에서 조용히 나 먹을 것만 조금씩 챙겨 먹으니 남편이 나와 먹으라 했다. 더 맛있는 것들은 밖에 많았기에.


"나 여기가 편해, 여보."


내 말에 남편이 들락날락 이것저것 전이나 나물 고기 등 메인 같은 반찬을 갖다주었다. 어머님이 남편의 수상한 움직임에 내게 이것저것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손님들 대접하기도 바쁘실 텐데...


그렇게 하루종일 쫄쫄 굶었던 나는 배를 볼록하게 채웠다.


배가 차니 슬금슬금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이제 하나 둘 가실 채비를 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연거푸 인사를 드리고 모두 떠난 자리를 하나 둘 치우기 시작했다. 역시나 나는 오늘도 시댁에서 잘 먹고 나서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제사상을 정리하고 음식들을 소분하면서 어머님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제일 먼저 누군가 보기 전에 한쪽에 두셨다. 살짝 와서 들고갈건지 안들고갈건지 의사도 물어보시고 안 들고 간다 하면 다른 식구들에게 나눠주는 소쿠리에 담으셨다.


시댁 제사에 늦게 온 며느리는 배부르게 밥 챙겨 먹고 좋아하는 음식들을 잔뜩 챙겼다. 염치없는 며느리다.


제사상 위의 시할머니 얼굴이 참 오랜만이다.

반가운 할머니 얼굴에 왜인지 안부 인사보다 감사 인사가 먼저 나온다.


염치없는 손주 며느리는 늦게 와서 절도 하지 못했지만 소원까지 빌었다.


'할머니, 늦어서 죄송해요. 그래도 제 소원은 들어주실 거죠? 저희 가족 모두 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할머니가 응원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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