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식구들과 이번 추석 때 대구로 여행을 갔었다.
대구의 서문시장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던 차에 아이들의 잠옷을 구입했었다.
그때부터 딸아이의 잠옷 캐릭터는 6살 인생 최애 캐릭터가 되었다.
꽤 유명한 캐릭터였는 지 어딜 가나 그 캐릭터가 보였고 그때마다 딸아이는 떨어져 있던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갑게 인사하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언제나 기다림은 내 몫. 내 귀엔 딸아이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그녀는 주고받는 대화를 했을 거야.
애지중지하던 두부조차 그녀의 잠옷에 다가가 탐색하려 하면 그녀에게 제지당한다. 딸아이가 정성스럽게 유치원선생님 이름을 쓴 색종이를 갈기갈기 찢은 전적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잠옷을 빨래통에 넣을 때면 내게 와 묻는 다.
"엄마, 오늘 빨래할 거야? 그럼 마르기도 오늘 해? 오늘 저녁에 나 이거 또 입어?"
"엄마 빨래 내일 할 거야."
"안돼. 오늘 해야지. 엄마가 미루는 건 나쁜 거라며. 오늘 할 일은 오늘 하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으면서."
"빨래통이 아직 덜 찼으니까. 좀 더 차면 할 거야."
"엄마 나빠. 엄마 미룸쟁이야!"
저렇게나 저 잠옷이 좋을까.
내년까지 입히겠다는 큰 포부로 좀 크게 샀던 잠옷.
바닥에 끌려서인지 어디에 걸려서인지 벌써 바지 밑단은 너덜너덜하다. 오만가지 추줍은 행동은 다하면서 지꺼에는 깔끔 떠는 딸아이가 더럽다며 이제는 입지 않겠다 선포할 법도 한데 일명 '시나브로 잠옷'은 예외인가 보다.
딸아이와 내가 이 잠옷을 '시나브로 잠옷'이라 부르는 이유는 딱 하나다. 이 캐릭터를 볼 때마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아이는 매번 소개를 시켜준다.
"엄마! 여기 봐! 시나브로야!"
"엄마, 엄마 시나브로 알지? 내 잠옷에 있는 캐릭터! 여기도 있어!"
"엄마, 시나브로다! 아, 집에 데려가고 싶다."
"엄마, 시나브로야. 이제 이 친구 이름은 알지?"
언젠가부터 캐릭터들이 보이면 '시나브로'를 눈으로 찾기 시작했다. 딸아이의 최애니 나도 반가웠다. 자주 인사를 시켜줘서 그런가. 내적 친밀감이 쌓였나.
글로 성장연구소에서 참여하고 있는 별별챌린지의 오늘 제시어에 '시나브로'가 등장하자마자 본연의 뜻인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보다는 딸의 최애 캐릭터가 떠올랐다. 아이의 잠옷과 함께.
오늘은 이거다!라는 생각으로 브런치글에 첨가할 캐릭터 사진을 찾기 위해 검색을 가동했다.
세상에.
엄마야.
이 글을 쓰기 직전에서야 나는 알았다.
'시나브로'라는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딸아이가 그간 지속적으로 소개해준 그녀의 최애 이름은 '시나모롤'이었다. 그 누구의 의도 없이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시나브로가 아닌 시나모롤이었다니. 심지어 입에 붙지도 않는다. 시나모롤은 매번 다른 이름으로 자길 부르며 인사하는 우릴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늘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나도 충격인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기도.
오늘은 내가 딸아이에게 소개해줘야겠다.
'시나브로'말고 '시나모롤'을.
떡하니 캐릭터 이름이 적혀있는 데 왜 한번도 나 스스로 읽을 생각을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