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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Oct 08. 2024

소풍 가는 딸의 도시락을 깜빡했다


"엄마, 나도 시나모롤도시락 싸줘."

"시나모롤 도시락?"

"응, 귀엽잖아~"


소풍 가는 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 딸은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도시락 얘기로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떤 건지 찾아볼까?"


폰을 들고 아이와 붙어 앉아 이리저리 사진을 뒤적여본다.


"이거, 이거! 귀엽지? 나 이거 싸주면 안 돼요?"


사진 속 도시락은 하얀 (강아지같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캐릭터모양의 밥에 새카만 김으로 눈과 입이 만들어져 있었다.


늘 실용적인 것보다 본인의 취향을 강하게 이야기하는 아이. 그런 순수한 아이 마음에 차가운 물을 끼얹는 T 엄마, 그게 나다.


"세아야, 저거 그냥 밥만 있는 거잖아. 도시락이 맛이 있어야지. 저건 그냥 맨밥인걸?"


"아니야. 그냥 밥이라도 괜찮아. 나 밥 좋아해!"


"그래도 저건... 진짜 그냥 밥인데... 아무튼, 세아 소풍 얼마 안 남아서 너무 좋겠다!"


캐릭터 옆에 갖가지 소세지와 돌돌 말려있는 빵이 있었지만 저 조연들을 빚어기엔 내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얼렁뚱땅 다른 이야기로 아이의 눈을 돌렸다.


남은 며칠을 내내 고민했다.

아니, 고민할 시간에 고민을 하지 않고 불평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의 소풍 하루 전인 어제가 첫째의 소풍이었다. 점심을 제공해 주는 학교 덕분에 도시락은 싸지 않는다는 알림장의 문구를 보자마자 속으로 환호를 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유치원도 도시락을 다 같이 단체주문하고 일정 비용만 내면 안 되는 걸까. 아이들끼리의 도시락 신경전이 생각보다 대단하다 들은 지 오래라 신경은 쓰이고. 엄두는 안 나고.


첫째는 남자아이라

엄마의 정성이 더 중요한 게 아니겠냐며 다른 사람의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게 더 중요하다는 긴 변명으로 한 설득이 통했다. 애초에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이 아니어서 가능했을 테지.


둘째는 나와 성향이 달라서 참 어렵다. 꾸미기보다 실용을 앞세우는 나와 달리 아기자기하고 거울 앞에서 시간을 참 많이 보내는 아이다. 그런 아이는 도시락의 모양이 어찌 보면 굉장히 중요했겠지.


나라고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문제는 어설프게 따라 했더니, 진짜 어설퍼보인다는 것. 귀여운 캐릭터라기보다는 어딘가 아파 보이는 캐릭터라던가, 살이 많이 찐 캐릭터라던가. 불편한 도시락이 되어버린다. 오히려 더 우스워지는 꼴이랄까.


남을 무작정 맹목적으로 쫓아간다는 건 이렇게 볼품없는 일이라는 깨달음만 남았다.


이렇게 일주일을 도시락 생각만 했다.

정작 중요한 도시락을 어찌 쌀지에 대한 생각은 빼고.


그렇게 나는 딸아이의 소풍 아침을 맞았다.

믿기 힘들겠지만 소풍도, 도시락도 잊은 채로.

(시험기간, 학부모세미나, 수업용 PPT작업 등으로 수면 시간이 확보되지 못한 요즘이라 애써 변명해 본다.)


고민총량의 법칙도 있는 것인가.

그렇게 내내 생각했던 것들이

당일 아침에 이렇게 감쪽같이 투명해질 수 있다니.


눈 비비며 나오는 딸이 도시락을 찾을 때 나는 내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듯하다. 분명.


아이의 눈을 잠시 다른 쪽으로 돌리고 다급하게 부엌의 모든 찬장을 다 열었다.


'이 아이는 시각적인 게 중요해. 시각적인 거, 시각적인 거..'


번뜩, 예전에 캐릭터 도시락을 도전했을 때 쓰고 남은 머핀유산지가 떠올랐다.


침착하게 프라이팬을 꺼내 오일 둘렀다.

냉동실의 새우볶음밥을 찾았으나 어디에도 없다.


..쿵.


'와, 진짜 큰일이다. 미칫다. 우짜노. 어쩔 수 없다.'


최후의 수단으로

밥솥의 어제 먹다 남은 버섯밥 한 덩이를 열이 받을 대로 받은 프라이팬에 올렸다.


지난주에 이런 걸 사냐며 남편에게 핀잔주었었는 데, 남편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후리가케를 뿌렸다. 참기름 조금 첨가하고 가스불을 껐다.


동글동글, 맨돌 맨돌

이뻐져라 빌고 빌며 한 덩이, 두 덩이씩 만들어냈다.


페레로로쉐 초콜릿처럼 한 덩이씩 유산지를 깔려고 했는 데 생각보다 큰 유산지에 '으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

냉장고를 열어 다이어트한다며 사놓은 훈제계란을 집었다. 다이어트 도전하길 잘했어. 나 자신을 칭찬하며 훈제계란을 둘로 갈랐다.


그렇게 도시락이 완성되었다.

들여다보면 너무 빈약한 도시락.

 버섯주먹밥과 훈제계란이라니.


유산지, 난 네게 모든 걸 걸었다. 잘 부탁한다.


혹시 모를 다음을 대비하기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샤인머스켓과 멜론을 따로 담았다.



"엄마, 도시락 다 됐어?"

아이가 부엌으로 걸어오며 묻는다.


내가 제자들에게 숙제 다해왔냐 물으면 그들도 이런 기분일까.


조심스레 아이표정을 살폈다.


"우아~  과일도 있어? 멜론까지! 오예~"




휴.....


다음 도시락은 미리 연구해 둬야겠다.

캐릭터 도시락은 빼고.





P.s 좋은 아이디어 있음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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