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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Feb 24. 2023

그간, 내 아이에게 엄마는 없었다.

절대, 무너지지 않아.

"이미 조금 늦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 한마디에 할 말을 잃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고 입술을 꽉 물고 간신히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첫째 아이의 행동에서 조금씩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내가 아이 옆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에게서 직접 듣는 선고는 생각보다 더 묵직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차에서 멍하니 앉아있어야 했다. 결국 나의 결핍이 아이에게도 전이되어 버렸구나.


당장이라도 학원 문을 다 닫아버리고 아이의 옆에만 붙어있고 싶었다. 정서적 결핍은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든다.  무던히 겪어 봤기 때문에 절대 내 아이에게는 알려주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고 겪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그 원인이 나라는 것 또한 너무 잘 알기에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쓰리기 시작했다.


생각이 많아졌다. 답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다. 나와 원래부터 친분이 있던 상담사 선생님께서도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상황도 잘 알고... 현실적인 것도 무시 못하다 보니 보통 상담할 때는 이렇게 말씀을 못 드립니다만, 원장님이 일 그만두셔야 해요. 일부터 그만두고 아이와 상담 다니세요."


세상은 참 비정하다. 이젠 하다 하다 나의 아들을 볼모로 삼아 나의 꿈을 포기하라고 한다. 치사하다 정말.


나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다. 타고난 재능이 부족한데 욕심은 많게 태어났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노력이었다. 노력하나면 극복 못 할 것이 없다고 믿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세상과 운명과 맞서며 오늘까지 왔다. 이제 나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는 데, 나의 노력으로 인해 나의 아이가 아프단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간신히 마음을 부여잡고 차를 출발했다.


저녁에 상담받을 걸 그랬다. 출근길에 들은 상담사 선생님의 한마디는 출근해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출근해서도 한참을 고민했다. 고민은 하나였다.  어떻게 학원 문을 닫아야 할까. 어쩌면 이때 이미 모든 걸 포기했었나보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도 다 내 아이들인데... 적어도 자신에게 맞는 선생님을 찾을 때까지는 기다려주겠으니 지금부터 선생님을 알아보시라고 안내를 드려야 할까...? '

'적어도 1년이면 다 자신의 선생님을 찾을 수 있지 않을 까?'

'아, 얘는 진짜 까다로운 데 선생님 못 찾으면 어떡하지?'

'아니야, 이러면 문을 못 닫아.'

끊임없이 생각을 하는 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나만의 메뉴얼. 나는 그런 쓸데없는 걸 만들어 놨었다. 그건 또 왜 이제야 떠오르는지.




위험감지 시 메뉴얼


1. 주변에 나의 상황을 알린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반드시 주변에 상황을 알려야 한다. 어떤 분야든 전문가와 다양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 살아가는 데, 자존심은 필요 없다. 자존감만 있으면 된다. 실제 경험자는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이다. 귀 기울이자.


2. 뒤를 돌아본다.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다. 어떤 일이든 나의 작은 행동이나 말에서부터 왔다. 뒤를 돌아보고 정확한 사태파악은 필수다. 정확한 파악이 있어야 가장 합리적인 문제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깨달아야 반복하지 않는다.


3. 나만의 방법을 찾자.

주변의 이야기와 나의 상황을 접목시킨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상황일 수 없다. 비슷한 상황일 뿐. 나에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다.





뜬금없이 나의 소식을 여기저기 알렸다. 뭐 좋은 일이라고 떠벌리냐 할 수 있지만 나에겐 절박함이다. 경험치가 있는 사람의 다양한 경험담이 필요했고 전문가의 이론적 지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돌아보기를 시전 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빼곡히 노트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2014년 12월 25일 남편의 생일 아침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되었다. 임신을 계획하고 임신 전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두줄을 확인하였다. 남편과 나는 여행일정을 전면 수정해야 했지만 생애 최고의 행복을 경험했다.


2015년 9월 5일 자연분만의 고통을 10시간 넘게 버티다 결국엔 제왕절개를 했다. 자연분만의 고통을 감내할 때 죽을 것 같았던 고통들이 제왕절개를 하니 살 것 같았다. 그때 당시 가장 빨리 걷기 시작해 아이에게 젖 먹이러 갔다.


2015년 9월 10일 아이의 피부가 뱀의 허물처럼 생겨서 간호사가 개별 로션을 갖고 오라고 연락을 취해왔다. 두 눈으로 아이의 피부를 확인하는 순간 임심했을 때 가리지 않고 모든 음식을 먹었던 사소한 기억들이 후회되고 나에게 화가 났다.


2016년 12월 아이가 열경기를 했다. 아이가 열이 났는 데, 해열제를 먹이려는 순간 아이가 축 늘어졌다. 아이의 동공이 풀려가고 있었다. 잠옷에 나시차림으로 아이를 들고뛰었다. 아이가 나를 보고 있었지만 내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 같았던 그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 한 달을 내리 울었다.


......


2022년 3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 혼자 격리 해제가 되었고 집 바로 앞 길 하나만 건너면 학교라서 혼자 첫 등교를 했다. 남편과 나와 둘째는 창문에 붙어서 첫째가 손을 들고 길 건너는 것을 지켜보며 담임선생님에게 아이의 위치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2022년 3월 초등학교는 마치는 시간이 빨라서 아이를 여러 학원에 보내게 되었다. 태권도, 미술, 피아노 다 하고 싶다 한 아이기 때문에 짠하지만 잘 버틸 거라 생각했다.


2022년 4월 학교에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걱정이 돼서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했는 데,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낼 수 없는 구조라고 한다. 칸막이가 다 되어있고 마스크도 다 써야 하는 데 다들 처음 입학했다 보니 서먹하다는 것.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2022년 5월 아이가 조금씩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놀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돌봄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데 자기는 학원을 가야 해서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학원은 또 다니고 싶다 하니 선택의 문제라 생각하고 넘겼다.


......


이런저런 사건들을 내 기억으로 재구성하며 글을 썼다. 기억력이 좋은 건지 말이 많은 건지 많이도 썼다. 다 쓰고 나서 이제 아이가 되어서 읽어보았다.


'내가 아들이라면, 어땠을 까?'


기어이, 내가 쓴 글을 읽고서 엉엉 울고야 말았다.


내가 쓴 글에서

그간, 내 아이에게 엄마는 없었다.


오직 '나'만 있었다. 나의 시각에서의 사건과 나의 감정만이 있었다. 기억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없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아이의 기분과 감정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해야 할 일과 해야 하는 이유만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따뜻함이 없었다. 나는 매번 바쁜 엄마였고 시간의 효율성을 따지며 아이에게 지시적 명령만 내리는 상사였다. 내가 아이를 위해 한 행동들은 아이에게 학대와 다름없었다.


그간 아이에게 하나하나 합리적인 이유를 아이눈높이에서 설명해 이해시켜 주었다. 엄청난 오만이었고 이기심이었다. 그건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아이를 꼼짝 못 하게 묶는 것이었다. 빠져나갈 구멍 없이 내가 지시하는 일을 하게끔 만든 것이다.


영혼이 바사삭 증발할 것만 같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난 이 아이에게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도대체. 왜!


슬픔과 좌절감은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휩싸였다.


뭐가 노력이야, 뭐가 꿈이야. 뭘 그렇게 이루고 싶다고 이 난리를 친 거냐고! 뭐가 그렇게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이 이야기는 듣지도 않은 거야.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고작 8살짜리 아이에게 시간의 효율성을 갖다 댔던 거냐고!


그저 아이는 나와 함께하는 순간이 필요했을 텐데. 주고받는 따뜻한 말 한마디면 충분했을 텐데.


어두운 물속에 가라앉는 심정이었다. 아니, 그냥 그대로 가라앉고 싶었다. 끝까지 무책임하게 도망가고 싶었나 보다.


한바탕의 울부짖음 끝에 온몸에 힘이 빠지는 순간이 왔다. 기력이 떨어지니 오히려 차분해졌다. 다시 진정하고 돌이켜보았다.


심호흡을 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위기가 왔다.  내 정신을 갉아먹는 벌레가 생겨버렸다는 뜻이다.  무슨 생각을 해도 주춤하게 된다. 나에게서 있던 확신이 점점 희미해진다. 많은 목소리들이 내게 틀렸다고 한다.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다. 답을 알 수가 없다. 아니, 내가 알고 있던 것들과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잠깐.


나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의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초조하다.


아니야, 괜찮아.


시간이 흘러가도 되니까 정리할 시간을 갖자.



다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많은 경험담과 격려의 카톡을 다시 한번 하나하나 읽었다. 찾자, 나의 답을.


그 사람들은 내가 아니야. 내 인생의 답은 나만 알 수 있어. 나만 찾을 수 있어. 나를 돌아봤으니까 이제 다시 앞을 보자. 못 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뿐이야. 조금 더 천천히 가면 돼. 더 잘 나아갈 수 있게 된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자. 위기가 왔다는 건, 기회가 왔다는 뜻이야.


남편과 기나긴 회의를 했다. 핵심부터 얘기했다.


"미안해. 나의 노력이 부족했어. 가족들에게 노력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안일했어. 내가 버티는 것과 가족들이 버텨주는 건 다른 일이야. 내가 버텨내는 것을 가족들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버텨내게 만들었던 것 같아. 가족들에게 더 노력할게. 하지만, 이 일로 나의 어떤 것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난 여전히 내가 노력해서 일궈내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때 아이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교육이 될 거라고 믿어. 그저 또 한 번의 위기가 왔고 나는 보란 듯이 이겨낼 거야. 여보에게도 미안한데, 나를 믿고 같이 버텨줘."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잘할 거라고 믿어. 같이 버티자."


나는 두 가지의 목표를 세웠다.


퇴근 후엔 아이와 책을 읽든 놀이시간을 갖든 반드시 아이와의 시간을 가질 것.(밤에 하던 업무는 무조건 아이가 잠들고 나면 꺼내기로)

항상 아이의 말을 먼저 들어주기.


이 두 가지로 아이에게 첫 한 발짝을 떼기로 했다.


'늦었다' 라는 표현은 나도 상담 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 표현 안에는 '보편적으로'의 의미 또한 내재되어 있다.


나는 늦지 않았다. 나와 아이는 이제 시작인 것뿐이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조금 더 특별할 뿐이다.






걱정해주신 분들과 꺼내기 쉽지않은 각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조언해주신 많은 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힘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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