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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Mar 05. 2023

탕수육 옆의 떡볶이

맛있는 떡볶이가 먹고 싶다면 탕수육가게를 가세요.


화려한 조명에 번쩍번쩍 눈이 부시다.

비틀대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떼 지어 다닌다.

부딪히고 싶지 않아 구석으로 어깨를 반으로 접다시피 하고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시끌벅적한 이곳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다.


길 모퉁이를 돌아서니 거짓말처럼 차분하고 어둑한 골목이 나타났다.

어두운 골목이지만 아주 외진 골목은 아니어서 공포심보다는 안정감이 찾아온다.

요란스럽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몇 발자국을 떼니 탕수육 가게 하나가 덩그러니 장사를 하고 있다.

어두운 거리로 새어 나오는 가게의 불빛에 이끌려 어느새 가게 문을 밀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테이블이 덜 치워져서 죄송합니다. 늦은 시간에는 저 혼자 하다 보니. 편한 곳으로 앉으세요!"


숫기 없는 남자사장님이 크지 않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장사하시는 분인데 엄청 소극적이시네.'

가게를 둘러보니 사장님 말대로 여기저기 술잔과 먹다 남은 음식들이 널브러진 테이블이 많다.

손님들이 한 차례 휩쓸고 갔나 보다.


'혼자서 하시면 힘들겠다. 요리에 서빙에... 다 어떻게 혼자 하시지?'

내가 할 수 있는 간단한 건 '셀프'로 곧잘 하는 나와 남편인지라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빈테이블에 앉는 다.

마음 같아서는 테이블도 조금 치워드리고 싶지만 오히려 마음이 불편할까 봐 그냥 물끄러미 가게만 둘러본다.

술을 파는 가게이고 그 안주로 탕수육이 메인인 듯한 느낌의 탕수육 가게다.

그런데 그와는 상반되는 인테리어가 내 눈길을 끈다.


'엇, 책이 많네. 사장님이 책을 좋아하시나 보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의 가림막이 책장이다.

책장은 어느 정도 가림막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뻥 뚫려있어서 시야를 답답하게 하지 않는 다.

무엇보다 책장의 일부분에는 책들이 채워져 있다.

테이블도 책장의 원목 색감을 살려 나무 느낌의 테이블이고

이내 책 읽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여기 책 읽기 좋은 카페랑 분위기가 비슷하네. 저 위의 술병이나 술잔하고 완전 이질적이네.'

혼자서 특이하다며 두리번거리고 있다 보니 신랑이 어느새 주문을 하고 음식을 들고 온다.

신랑이 가져온 음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장님이 소장한 책들을 살펴본다.

자기 계발서가 많은 편이었지만 틈틈이 소설도 섞여있다.


"여보, 이 떡볶이는 진짜 여보스타일인데?"

불쑥 나의 생각 속으로 남편이 침투했다.

그리고 돌린 나의 시선에는 탕수육보다는 딱 내 스타일의 떡볶이가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오와, 진짜 이런 떡볶이 얼마 만에 보는 거야?"

꾸덕꾸덕한 양념이 떡볶이 떡에 덕지덕지 붙어 흘러내린다.

나는 젓가락으로 오동통한 떡볶이 떡을 집어 입으로 밀어 넣는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떡볶이보다는 추억이 젖어있을 법한 불고 불은 떡볶이에 눈이 가더라.

이거 진짜 맛있다! 와, 나는 여기 떡볶이 먹고 싶을 때마다 오겠는 데?"

매콤 달콤한 양념사이로 쫀득한 떡이 씹히면서 내 혀는 대만족을 소리친다.

사장님의 성향이 소극적이게 보였다는 사실도 잊은 채 큰소리로 사장님을 향해 외친다.


"사장님! 여기 떡볶이 진짜 맛있어요!!"

가게에는 우리와 사장님밖에 없다.

곧이어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감사합니다. 많은 먹으세요. 드시고 싶은 만큼 드릴게요. 여기 밥통이 다 떡볶이예요."


'엥? 밥통!? 떡볶이를 밥통에 보관한다고? 보관법조차도 신박하네.'

뭔가 처음부터 이끌리듯 이 가게를 들어왔지만 인테리어며 탕수육 옆 떡볶이도 그렇고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취향에 맞아떨어지는 가게다. 이곳은 내가 진심으로 애정하는 가게가 될 것 같다. 그렇게 신랑에게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든다며 유난을 떨어댄다.

신랑은 탕수육을 나는 떡볶이를 해치우던 중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다른 사람과 나누겠습니다.'


긴 글이었지만 핵심을 짚어보자면 일정 금액을 주변의 불우한 이웃들과 나누겠다는 각오와 초심을 지키기 위한 목적의 글이다. 이 글은 한 기둥의 벽을 온전히 차지하고 있다.


"여보. 나는 이런 사장님이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 이런 떡볶이를 어디서 먹겠어? 절대 문 닫을 일 없으면 좋겠다."


나는 떡볶이 리필을 3번이나 받았고 사장님은 그때마다 가득 퍼주셨다.

얼마든지 많이 먹고 가라던 사장님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나 있다.


"사장님, 진짜 사장님이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진짜 떡볶이도 탕수육도 다 맛있었습니다. 저는 계속 먹으러 올 거고 배달도 시켜 먹을 거예요! 진짜 진짜 사장님이 잘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내일도 늘 힘내세요!"


사장님의 진심이 섞인 떡볶이를 3번이나 먹었으니까 나도 내 진심을 섞어 사장님을 응원하면서 헤어짐의 인사를 전한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떡볶이도 언제든지 있습니다."

사장님은 쑥스러우신 듯 귀까지 빨개지며 마지막까지도 조심스레 대답한다.


식당에서 나오면서 허리 숙여 꾸벅 인사를 하며 나온 적은 몇 번 없었던 것 같다.

짧다면 짧은 식사시간이지만 사장님의 운영철학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사람을 대하는 진심도 직접 겪으니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가 아는 맛집을 공유하는 걸 꺼리는 편이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내게 불편함을 줄 거라는 이기심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진심을 받으니 내 불편함은 생각할 겨를도 없고 꼭 그 사람이 잘 되었으면 하는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이후 떡볶이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탕수육가게를 추천하고 있다. 탕수육 이야기가 나와도 이 탕수육 가게를 추천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사교육계에서는 학부모님들이 선생님을 독차지하기 위해 소개를 잘 시켜주지 않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부모님들은 대부분 소개를 통해 오셨고 여전히 왕성하게 소개를 해주신다.

문득, 학부모님들이 내게 보내준 응원이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응원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떡볶이로 벅찬 가슴이 한 번 더 벅차오른다.



사장님에게 질 수야 없지.

의미 모를 경쟁심이 불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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