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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Mar 04. 2023

그와의 낭만

Feat. 키즈글램핑

술을 마시는 그는 감성을 즐긴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이성적이다.


그는 비 오는 날 토도독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포장마차에 대한 환상이 있다. 목은 소주로 적시며 허리춤과 어깨춤은 비로 적시는 그게 감성이라 입이 닳도록 얘기한다.


그런 그의 결혼 로망은 일과 이후 아내와 나누는 시원한 맥주 한 잔과 대화였지만 정작 현실 와이프는 23살부터 한 잔의 술도 용납 못 하는 잔소리만 쏟아내는 고지식한 여자다.


늘 그는 내게 서운함을 품고 있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탓에 그 서운함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사람을 좋아하던 그는 나의 직업상 늘 아이들의 저녁을 책임져야 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족쇄를 달고서 집에 갇혔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의 씁쓸한 미소가 그의 일상 표정이 되었고 그제야 나는 그의 깜깜한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어둠이 내린 세상의 커튼을 열어젖히기 위해 그를 위한 시간을 조금씩 확보하기 시작했다.

크게 무언가를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틈을 내어주었다.



오늘 그를 위해 준비한 틈은 키즈글램핑이다.

둘만의 캠핑은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키즈글램핑이라면 아이들도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고 아이들 놀거리가 많아 우리의 손과 시선도 조금은 줄일 수 있다.


키즈글램핑일정을 이야기하는 순간 아이들도 잔뜩 신이 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눈치채지 못했다. 남편의 신남은...



와서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남편표 김치찌개부터 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늘 남편이 구어오던 고기를 내가 구웠다. ( 고기 못 굽는 우리 둘은 바베큐보다 버너와 불판을 선호한다. )



차가운 어둠이 내려앉자 여기저기 조명들이 깨어나고 덩달아 우리 속의 감성도 깨어났다. 진작부터 밥을 먹고 또래친구들과 뛰어노는 아이들 덕분에 남편과 나는 조곤 조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고마워.
요즘 나 숨통이 트인 것 같아.

내가 내어준 작은 틈이 그에겐 숨을 쉴 수 있는 구멍이 되었다. 남편이 측은하면서도 참 고마웠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남자라 약한 소리 한 번 못 내고 아내 외조한답시고 꾹 참아온 그는 어느새 주름이 하나 더 생겼다.

한동안 서로를 마주 보던 우리 둘은 조용히 손을 맞잡고 음료수가 든 컵과 소주가 든 컵은 맞댄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나아가자.



우리의 낭만을 위하여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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