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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Mar 14. 2023

'나'의 생일

내가 하는 축하. 내가 주는 선물.


"쌤, 좀 있으면 쌤 생일이죠?"


감사하게도 다른 사람을 통해 매번 내 생일을 인지했다.

나 같은 선생님들은 날짜보다 요일에 더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개인 행사는 사소하게 놓치기 일쑤.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람관계에 있어 찌질 그 자체였다.

생일로 얘기하자면 내가 생일인 것을 누군가가 알아주고 축하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정작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을 내입으로 말하기엔 민망했다. 말하지도 않고 알아주길 바란셈이다. 기억력이 좋거나 섬세한 사람들은 아끼는 이의 특별한 날까지도 챙긴다. 어쩌면 나는 축하가 고팠다기보다는 누군가에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카카오톡은 분명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생일 표시 기능을 만들었을 거야. 카카오톡의 본질자체가 "소통"이니까.


마음이 가난한 어린 시절엔 '누가 내 생일을 알아줄까' '아무도 모르고 지나치면 어쩌나' 지레 겁먹고 애써 태연한 척 혼자만의 연기를 했다. '나는 생일을 신경 쓰지 않아. 그런 게 무슨 의미야.' 스스로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 했던 행동들에 더 비참해졌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최면대로 된 것인지, 그저 어른이 된 것인지 이벤트에 매우 둔감한 사람이 되었다. 이젠 그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으면 민망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축하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태도로 어린 시절의 마음빈곤을 들킨 것만 같다. 노력 없이 받는 축하는 내게 낯섦 그 자체였다. 그러니 목소리가 어색하게 올라가게 된다. 과장된 표현과 표정에서 불편함이 새어나간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 생긴 일이다.

스스로에게 축하하는 걸 먼저 했더라면 다른 사람의 축하는 의식하지 않았겠지. 나의 축하가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오늘은 나 스스로를 축하하고

우선 모든 걸 접어두고 가장 갖고 싶었던

잠시의 휴식을 선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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