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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Mar 27. 2023

아빠와 아들의 전쟁

천천히.


아빠 나빠! 진짜 나빠!
아빠가 제일 싫다고!


 현관문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아이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남편과 아이들이 외출에서 돌아왔다. '글로성장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나작가' 줌수업을 듣던 중이었기에 일단은 수업에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다.


감정이 격해진 남편도 어느새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눈앞의 화기애애 평화로운 줌수업화면과 방문 밖의 부자간의 전쟁 중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타닥타닥타닥

다급하게 대충의 상황전달을 끝으로 황급히 수업을 종료했다.




 눈앞의 풍경은 아수라장이었다. 큰 아이의 큰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입술이 삐죽삐죽 '' 자가 됐다.  아무렇게나 움직이면서도 날카로운 말들을 잘도 뱉어댄다.


자신이 뱉을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말들이겠지.


소리도 점점 커지고 아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비명에 가깝다. 자신이 내뱉는 말이 날카로워 스스로를 찌른다는 것을 아직은 모르겠지.


남편은 말이 많지 않다. 그의 무서운 표정과 무거운 말 한마디에 그의 분노가 가득 담겨있다. 지금의 상태는 위험하다. 평소 '화'가 없는 남편이고 자상한 아빠지만 그가 생각하는 '인성'이라는 버튼을 누르게 되는 행동을 하면 그는 '교육'이라는 명목과 합쳐져 감정이 격정적으로 표출된다.


그에게 다급하게 눈짓했다.

'일단 진정해. 잠시 떨어져 있어.'

필사적으로 텔레파시를 보내는 데 그런 내 신호를 읽었는지 꾹 참다 한마디 한다.


"너무 그렇게 다 받아주지 마."

그도 많이 지친 상태겠지.



 대략적인 전말은 말 안 해도 파악이 된다. 남편은 퇴근이 늦는 나 때문에 지인과의 만남이 평소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생활에 익숙해진 언젠가부터는 양해해 주는 지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기 시작했다. 오늘이 그날이다.

 지인과의 만남이 큰 아이에겐 절호의 기회다. 아빠의 친목시간 동안 아이는 폰을 계속 즐길 수 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일관성을 중요시하기에 마음에 들지 않은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할 말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람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남편이 평일저녁이면 온통 아이와의 실랑이로만 채워진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주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지인들을 만나는 남편과 폰으로 아이를 회유하는 방법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큰 아이는 조절에 있어 신경을 써야 하는 아이다 보니 2시간 길게는 3시간 자유로이 폰을 하고 나면 늘 끝이 좋지 않았다. 오히려 30분. 일정시간을 정해 게임이나 영상을 보게 되면 평화로운 마침표가 가능하다. 적정시간을 넘어서면 뭐에 것 마냥 악을 지르고 난리가 난다.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해 봐라는 듯 잔뜩 안테나를 뽑아서 시비의 대상을 찾고 하나 걸리면 이 사달이 나는 것.


신랑은 지인과의 식사자리가 생각보다 길어져 2차 없이 집으로 오는 데 아들은 2차까지 가서도 폰을 더 할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2차를 가지 않은 아빠가 나쁘다는 것. 남편은 게임 때문에 그런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콕찝어 비판하니 아이는 더 흥분했던 것.




남편을 안방에 보내고 아들 옆에 가만히 앉았다. 이미 엄마가  혼낼 거라 생각했는지 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깡통엄마 : 무슨 일이야?

허수아비아들 : 엄마도 필요 없어! 맨날 나만 뭐라 하고! 아빠가 나쁜 건데! 나만 잘못했다 하잖아!


울부짖음에 조금 더 기다렸다.


깡통엄마 : 엄마는 무슨 일인지 몰라. 세현이 얘기가 듣고 싶어. 무슨 일이야?

허수아비 아들 : 싫어!


안에서 남편이 날을 세우고 있을 게 뻔해서 나도 잔뜩 긴장이 되었다.


깡통엄마 : 세현이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엄마는 알 수가 없어. 말해 줄 수 있어?


그제야 끄윽 끄윽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를 했다. 대충 아빠가 더 논다 했는 데 그래놓고 집에 왔다는 얘기인 듯.


깡통엄마 : 그래, 근데 세현아, 숨을 한번 깊게 쉬어봐. 열심히 말해줘도 엄마가 알아듣기가 어려워서. 차근차근 말해줄 수 있겠어?


큰 숨을 몇 번 내쉬더니 이내 아이는 이야기를 했다.


허수아비아들 : 나는 게임 때문이 아닌데 아빠는 자꾸 게임 때문이라 하잖아. 그냥 더 놀고 싶은 건데...

깡통엄마 : 아, 그랬구나. 억울할 만도 하네. 그냥 더 놀고 싶은 건데, 아빠가 그걸 몰랐나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보는 녀석을 보는 데 마음이 아프다.

' 엄마가 잘 가르쳐 주지 못 했어서 미안해.'


깡통엄마:아들, 엄마가 아들 안아주고 싶은 데 이리 와볼래?


처음엔 고개를 가로졌던 아이가 이내 조심스레 안긴다.

배 위에 아이를 놓고 등을 쓸어내리며 다독여 주었다.


깡통엄마: 사실, 엄마는 세현이편인데, 엄마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엄마는 처음에 세현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어. 울고 있기도 했고 소리치기도 해서. 그래서 아마 아빠도 세현이가 하는 말을 엄마처럼 못 알아듣고 오해를 한 건 아닐까? 세현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지만 아빠도 엄마 못지않게 세현이를 사랑하거든.  세현이가 화가 날 때 속상할 때 울면서 소리치면 엄마나 아빠가 깜짝 놀라고 말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어. 그러면 세현이는 또 답답해지잖아. 그렇지? 어때, 세현이생각은?


허수아비 아들: 말을 못 알아들어서 오해하는 거야?


깡통엄마: 그럼, 모르고 오해가 쌓이는 거야.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깡통엄마: 그럼 우리 다시 생각해 보자. 세현이는 왜 화가 났던 거야?


우물쭈물 있던 아이는 망설이더니 대답했다.


허수아비아들 : 모르겠어. 아까는 알고 있었는 데 까먹었어.

깡통엄마 :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그럼.. 화가 난 건 어쩌지..?

허수아비아들 : 이제 괜찮아요.

깡통엄마 : 그래? 그럼 다행이다. 엄마는 세현이가 화내는 것보다 행복한 게 좋거든. 그런데 화를 내고 보니 뭣 때문에 화를 낸 지 까먹으면 아빠랑 오해를 풀 수가 없잖아. 아빠는 세현이 말을 못 알아들어서 게임 때문이라고 오해하고 있을 텐데... 그리고 어른한테 소리 지르는 건 나쁜 행동인데, 오해 때문에 소리 질러버렸잖아. 아빠도 속상하겠다.

허수아비 아들 : 싫어.

깡통엄마 : 응? 뭐가 싫어?

허수아비아들 : 아빠한테 사과 안 할 거야.


이... 똑똑한 녀석...


깡통엄마:엄마는 사과하라고 안 했는 데? 사과는 용기 있는 사람이 사과해야겠다 마음먹었을 때 하는 거야. 그건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조용히 날 쳐다보는 아이를 다시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깡통엄마 : 엄마는 오해가 생기지 않는 방법을 말해주려 했어. 다음에도 오늘 같은 순간이 오면 울면서 소리치지 말고 이유를 설명해 줘. 엄마나 아빠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엄마, 저 이러이러해서 속상하고 화나요. 이렇게. 소리 지르고 그런 거는 그만큼 화가 난다는 거잖아.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해. 그래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야 해. 그러면 누구든 귀 기울여 들어줄 거야.


그제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에게 아빠한테 가서 사과하라 얘기하지 않았다. 다음 날 저녁, 아이가 불쑥 내게 와 이야기한다.


엄마,
나 아침에 아빠 일갈 때 용기 내서 사과했어요.
 나 용기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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