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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Apr 18. 2023

누구냐, 내 라면을 비웃은 게!

비 오는 날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라면 먹고 싶다. "

"내가 끓여줄까?"

"아~니."


남편을 째려본다.

왜 끓여준다 해도 거절하는 거지? 괜히 기분 나쁜데..?


"아니, 내가 끓여 먹으려고. 여보는 쉬어."

살기 어린 내 눈빛을 의식했는지 남편이 황급히 부엌으로 간다.


라면 선반에서 한참을 뚫어져라 라면을 바라보던 남편.

"그래. 오늘은 신라면이다"


그의 신라면은 왠지 나를 차단하는 느낌이다.


"여보야, 그냥 해물라면 같이 먹으면 안 돼?"

"응, 난 신라면 먹을 거야."


흥.칫.뿡.

그러든가 말든가.

괜히 혼자 삐져서 라면 물을 받는다.


음... 내 라면의 비법은 내가 좋아하는 냄비와 눈대중이다.


나는 국물이 좋다!

그럼 국물을 많이 만들어야지.

국물을 많이 만들려면? 좋아! 물을 더 넣자!


끓어라, 끓어라, 얼른 끓어라.


냄비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가스레인지가 농땡이라도 부릴까 지키고 섰다.


그 사이 남편은 김치를 꺼내고 다른 반찬들도 꺼낸다.

부지런하다. 나는 딱 라면만 있음 되는 데...

라면 하나를 먹어도 이렇게나 다르다.


남편이 반찬들을 꺼내는 사이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야, 물만 올려줘?"

"아니, 아니, 아니."


대답... 한 번만 해...


나를 달래듯 냄비가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를 낸다.


고급스킬 발휘!

스프와 건더기를 동시에 뜯어 마구 쏟아낸다.

맛있어져라, 얍!

다 털어낸 스프봉지에 혀끝을 대니 짜릿하다.


침이 가득 고인채 또다시 고급스킬 발휘!

면을 들어 냄비 속으로 던져 넣는다. 워후~

(사실, 뜨거울 것 같아 쫄아서 거의 던진다.)


나의 라면요리의 가장 핵심은 정성이다.

정성껏 처음부터 끝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애정 가득하게 쳐다본다. 사랑을 넣는달까.


그러다 문득 계란이 떠올라  뽀르르 달려가 하나 쥐어온다.

계란은 불량한 내 식단에 양심상 올리는 단백질이다.


어느새 침이 꼴깍꼴깍 삼켜질 즈음이면

젓가락으로 휘적휘적 저어 면들을 잘 분리시켜 준다.


쬐끔 덜 떨어졌을 때,


그래! 지금이야!

빠르게 계란을 파팍 싱크대모서리에 내려치고서

냄비 위로 올려 경건하게 껍질을 양손으로 벌린다.

보통 잘 안 깨져서 엄지손가락에 힘줘 자연스러운 척을 한다.


이때, 껍질이 같이 들어가면 누구보다 빠르게 빛의 속도로 빼야 한다. 라면 색깔 때문에 눈 한번 깜빡하면 오늘 그 껍질은 내 뱃속행이다.


이렇게 가장 어려운 계란 까기를 하면 계란 흰자가 어느 정도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투명이 불투명이 되어갈 때쯤이다.

젓가락을 들고서 노른자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노른자는 살아있을 때 공격해야 한다!


노른자를 국물에 흐트러뜨리고서야 불을 끈다.

의기양양하게 내 라면을 들고 식탁에 가 앉는다.


남편은 내 라면을 보고 어깨를 들썩인다.


왜! 뭐?! 왜?!

침이 쏟아져 나오기만 하구만!


숟가락을 집어 들어 주황 국물부터 뜬다.

뜨거울까 후후 분다.

호로록 꿀꺽.


와. 존맛탱.

승리의 미소를 남편에게 지어 보인다.


"맛있어?"

"응! 엄청!"

"그래그래, 많이 먹어."


... 흥...


호로록 홀짝 국물과 면을 쉼 없이 먹어댈 때

아들이 왔다.


"엄마! 나도 라면 먹을래!"


아들에게 면을 건져 숟가락에다 돌돌 말아 내밀었다.

오물오물 작은 입이 움직이더니 말한다.


"엄마! 엄마 라면 최고 맛있어! 하나도 안 매워!"


거봐, 정답이 어딨어?

내 입에 맛있음 된 거지.

우리 아들도 내꺼가 최고라잖아~


어깨가 한껏 올라간다.

역시 세상에 정답은 없다.

내 답은 내가 찾는 거지.


다 그저 예시이고 모범답안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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