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내 손이 써내려 가는 세상

by 잔잔한손수레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30년 만에 발견한 나의 쓸모에 숨이 차다.
거친 숨을 겨우 참으며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손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손과 함께 시선이 위로 향한다.

하얀 천장을 내 손이 덮고 있다.
가지런히 모은 손가락에는 마디마다 굵은 주름이 있다.
반듯한 손톱은 나를 닮았다.
매끈한 손등 피부에 도드라진 뼈마디 두개. 그리고 핏줄하나.
똥똥한 엄지손가락이 여지없이 내 손이다.



넓디 넓은 이 세상에 드디어 딱 이만큼의 내 세상이 생겨났다.

내 세상에서 나는 발랄한 공주도 될 수 있고 위엄있는 여왕도 될 수 있다.

잔혹한 살인마나 비열한 조폭이 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연예인이 될 수도 있다.

이곳은 나만의 세계다.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 세상에서 그간 참아왔던 거친 숨을 이제야 시원하게 뱉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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