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여자는 조용히 검은색을 채운다.

by 잔잔한손수레


"이미 사랑은... "


잔잔하면서도 공허한 여자의 목소리가 사방의 벽에 부딪힌다. 부딪히고 부딪혀 다시 여자의 귀에 닿는 다.


아련한 눈빛으로 티비화면을 바라보는 여자는 오늘도 검은 옷과 검은 머리, 검은 기분이다.


여자는 때때로 홀로 옥수수수염차와 포카리스웨터 한 캔을 쥐고서 이곳을 찾는다.


2평 남짓의 이 네모난 공간은 여자의 목소리로 가득 찬다.


여자의 책이 출간계약이 되어 가슴 벅찰 때도, 남자친구와의 이별에 온 세상이 멈춘 듯할 때도.


왜일까, 채워지지 않는 작은 구멍이 늘 함께한다.


그 구멍이 커져갈 것만 같을 때, 여자는 이곳에 온다.


시끄러운 음악소리 덕분에 고요해진다.

빨간 파란 조명들의 화려함이 검은색을 메운다.

커다란 화면이 너무 빛나서 잠시 구멍을 보지 않을 수 있다.

원탁 테이블 위의 두꺼운 책 안의 무수한 제목들이 여자의 머릿속을 메운다.


그렇게 퀘퀘한 냄새가 묻어있는 작은 박스 안에서 여자는 스스로 검은색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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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옥수수수염차와 포카리스웨트를 들고 문을 열었다.

퀘퀘한 냄새가 묻어있는 작고 어두운 박스 안으로 발을 딛는 다.


테이블 위 두꺼운 책 옆에 옥수수수염차와 포카리스웨터를 내려놓았다. 오늘도 그녀는 검은 재킷과 검은 바지다.


까만 제목들이 가득한 두꺼운 책을 펼치고서 페이지를 뒤적인다. 이내 숫자를 꾹꾹 누르고 마이크를 집어든다.


"이미 사랑은..."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귀를 때린다. 조용히 여자는 목소리를 내어본다. 어느새 여자의 눈은 작아졌고 가늘어졌다.


왠지 세상이 검해지는 듯하다.


출간계약을 했을 때도, 남자친구와 이별을 했을 때도 여자는 이곳으로 향했다. 왜인지, 그녀의 노래는 공기가 많다. 여자는 이곳에 오면 심호흡을 많이 하게 된다.


눈부신 빨간색 파란색의 조명들 때문에 눈을 찡그리기도 하고 노래를 부를 때는 티비만을 응시한다.


아까 페이지를 넘기며 봤던 제목이 떠오른다.


'이거 끝나면 그거 부를까?'


그렇게 여자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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