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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Sep 08. 2023

맞아요. 저는 집돼지가 확실합니다.

어릴 적 내 별명은 산토끼였다. 온 가족이 등산할 때면 그렇게 오빠한테 지기 싫더라. 오빠 뒤꽁무니를 쫓아서 죽기 살기로 오르고 또 올랐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엄마 아빠는 나를 산토끼라 불렀다. 내 속도 모르고. 오빠는 참 빨랐다. 어릴 적 체력장에서 단 한 번도 일등을 놓친 적 없는 사람답다. 나도 체력장에서 일등을 해 보이겠다고 바득바득 악으로 체력장을 치렀던 기억이 있다. 일 등을 한 건 윗몸일으키기밖엔 없었지만. 10여 년이 지나 오랜만에 다 같이 등산했다. 아빠 나름으로는 예비 사위의 체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예비 사위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철인삼종경기를 취미로 하는 오빠를 따라갈 순 없었다. 중반쯤에 올랐을 무렵부터는 내가 예비 신랑의 손을 꽉 잡았다. 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살기 위해.

"우리는 그냥 완주만 하자."

사실, 불어난 살에 내 몸이 너무나 무거웠다. 예전의 내 몸과 체력이 아니었다. 결혼하기도 전부터 나는 그에게 의지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길에 토끼띠인 오빠가 얄밉게 말했다.

"뭐고, 지하 니 이제 완전 집토끼 다 됐뿟네. 아니지, 이 정도면 집돼지 아이가. 운동 좀 해라."

그때 나는 각오했다. 오빠가 아내 될 여자를 데려오면 똑같이 산에 데려오겠다고.

몇 년 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하지만 슬프게도... 오빠가 지금의 새언니를 처음 소개할 때 나는 망연자실했다.

"어떻게 처음 만난 거야?"


"철인삼종경기 동호회에서. 내보다 더 악바리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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