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한손수레 Sep 05. 2023

왜 먹질 못 하니.

"앞으로 너는 생일 없을 줄 알아!"


미역국을 먹지 않겠다며 맨밥만 젓가락으로 몇 알 먹고서 밥그릇을 밀어내는 생일 당사자를 보니 속에 천불이 터졌다.


결국 생일 아침부터 아들에게 쏘아붙였다.


왜 저 아이는 세상 모든 게 맛이 없을 까.

또래 아이들보다 현저히 작은 초2 아들은 어딜 가나 유아의 친절함을 받는 다. 모두가 유치원생으로 바라보니.


6살 동생에게 몸무게를 추월당한 건 이미 옛날이야기다. 19킬로 오빠보다 더 컸다며 기뻐하는 21킬로 딸. 그 옆에 키는 그래도 자기가 더 크다며 우물거리며 말하는 첫째.


남자아이다 보니 작은 덩치가 유독 신경 쓰인다. 혹여나 친구들이 무시하진 않을까. 물론 작은 친구를 무시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엄마나 선생님은 없겠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때론 본능에 충실하다. 나는 우리 아이가 먹잇감이 될까 조바심이 났다.


밥얘기를 계속하면 트라우마가 되진 않을까 싶어 본인이 좋아하는 것 위주로 유도해 보기로 했다. 문제는 좋아하는 게 없다는 것. 치킨도 이제야 겨우 먹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한 조각을 세 번에 나눠먹지만.


밥 외의 간식을 다 끊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밥을 먹은 사람만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둘째는 밥을 다 먹고 과일도 먹고 과자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우유도 먹는 다. 첫째는...  "응, 난 간식 안 먹어도 돼. 간식이 건강에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이 무슨 합리화인가. 말문이 턱 막혔다. 밥을 잘 먹어야 건강하단다, 얘야.


시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한의원에 가셨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보약을 해준다셨다. 맥을 짚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결재를 하는 데, 20kg을 기준으로 미달은 보약값이 더 저렴했다. 이거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속도 모르고 아이는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내가 19kg이라서 더 싸게 했지?"


이 정도면 시댁이든 친정이든 모두의 관심사가 아이의 성장에 있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은 관심이 늘 부족하다. 혹시 이 관심을 이 아이가 즐기는 것은 아닐까.


주변에서는 이야기한다.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그랬는 데 지금은 혼자 닭 하나 순식간에 해치운다. 지금은 180 이 넘는 다. 그러니 그런 시기도 있구나 하라고.


그런데 위는 먹는 양에 따라 용량이 맞춰진다던데.

자꾸 안 먹어서 위가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져 보인다는 게 문제다. 고작 밥 몇 숟갈에 가 부르다며 숨을 내쉬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 건지, 아이들에게 무심한 타입이다. 그런 내가 아이의 식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작년 여름방학 때이다. 유치원을 다닐 때 선생님의 케어를 믿기에 한 번도 신경 써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학교에 들어가서도. 선생님이 케어를 해준다의 개념이 아니라 그저 자기 밥은 자기가 먹는 거니까. 생각조차 못 했다. 그런데 여름 방학 때는 급식소가 문을 열지 않아 내가 도시락을 싸줘야 했다. 아이가 하교하고 나서 열어본 도시락 통에 나는 몇 번이고 자세히 다시 들여다봤다. 도대체 뭘 먹은 거지? 그대로 다시 들고 온 건가? 며칠을 지켜보다 아이에게 물었다.


"너, 밥을 먹긴 한 거야?"

"엄마가 밥을 너무 많이 싸줘서 그래. 밥도 먹고 반찬도 먹었어."


정말인지.. 여러 번을 자세히 들어다 보았다. 틀린 그림을 찾아내기 위해.


이 아이는 맛의 즐거움을 모르는 게 아닐까.

그저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 필요한, 딱 그만큼만 먹는 걸까.


그러면 걸을 때 태권도 하면서 걷질 말던지.

좀 나부닥 거리지 말고 앉아만 있던지.

대체 그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거니.


다이어트하려면 딱 이 아이 같은 생활을 하면 될 듯싶다.



이번 여름에는 아이들은 금방커서 좋은 옷을 사줄 필요 없다던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큰 아이 옷은 좋은 옷을 장만했다.


2년째 저 아이는 19에 머물러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하...

작가의 이전글 쫓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