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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Oct 18. 2023

마지막 선물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핑계로 방치되어 있는 우리 집의 두 아이 때문에 남편이 칼을 빼 든 건 작년이었다.


애초에 내 성향을 잘 알고 있던 남편은 내가 임신을 하자 아기를 위해 일을 그만두길 요청했었다. 하지만 출산 과정에서 수면마취에 취해서도 허공에다 수업해 대는 내 모습에 그는 감명을 받은 것인지 '조건부 허락'을 해줘서 1인원장 학원을 오픈하게 되었다. 그의 조건은 일을 집으로 가지고 오지 않는 것과 주말은 절대 일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를 뼛속까지 일중독자라고 생각한 그가 아기를 위해 제시한 최후의 딜이었다.


그의 걱정이 납득이 됐다. 나 또한 걱정하던 부분이었기에 그러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수긍하고 약속했다.


하지만 오픈한 지 고작 10개월 만에 그 약속은 깨졌다.


밤늦은 시간까지 상담을 하거나 채점을 하기 일쑤였고 아침부터 출근해서 스터디나 수업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키워 올린 아이들이 자라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수면시간까지 3시간ㅡ4시간으로 줄었다. 남편의 굳어가는 표정과 줄어드는 대화에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작년 2월, 몇 년을 꾹꾹 참던 그는 고등부 수업 중단에 이어 중3 겨울이 되면 아이들을 졸업시키는 졸업 제도를 요구했다. 애초에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나였기에 변명이나 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첫째가 감정 결핍의 전조 증상을 보이면서 선택이나 고민의 여지조차 없어졌다. 엄마로서의 나는 많이 부족했고 이는 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지도하는 아이냐, 내 아이냐는 유치하지만 현실적인 물음에 발만 동동 구르던 나는 결국 내 아이를 택했다.


그렇게 우리 학원에는 졸업제도가 만들어졌다.


나와 많은 시간과 사건을 겪어온 중3 아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작년부터 지켜봐 와 알면서도 중3이 되고부터 고등부에도 계속 함께 해달라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간절하게 전해왔다.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가슴이 저릿해졌다.  나는 내 아이를 택했다고.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나를 찔러댔다.


매년 나는 이걸 경험해야겠지. 원치 않는 이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은 나를 슬프게 했다.


하지만 슬퍼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

슬픔에 주저앉지 않고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걸 고민해야 했다. 슬픔만큼 걱정도 컸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아이들이 슬럼프를 겪을 때가 제일 걱정이 되더라. 그때 나는 옆에 없으니 나의 응원이나 격려는 안 들리겠지.


사람이 좌절을 겪을 때 그 사람을 일으키는 건 '말'이다.

희망적인 메시지가 그 사람에게 닿았을 때 그 사람은 그 시련을 견디기 시작한다. 언젠가는 끝날 거라 믿게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옆에 없어도 이 메시지를 전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나는 아이들에게 졸업 선물을 준비했다.


오늘 택배가 도착했다.

아이들에게 전할 샤프에는 내 응원이 새겨져있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 다. 널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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