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경 Jun 20. 2024

<6월엔 락 #1> Rock will never die

나의 락 이야기 # 1 - 반드시 다시 온다

논술을 위해 책을 읽은 ‘척'할 수 있는 ‘독서평설'이라는 고등학생 전용 논술 잡지가 있었다. 책 이외에도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는데 아직도 인상 깊은 내용은 그 어떤 책 내용도 아닌 앨범의 한 자켓 사진이었다. 한 번 맞춰보시라. 수영장같은 곳에 환한 표정의 어린 아이가 둥둥 떠 있는 사진. 바로 Nirvana의 앨범이다. 


사실 거창한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나는 이 앨범에 어떤 노래가 있는지 모른다. 저작권 개념이 없던 나는 너바나의 노래를 검색해서 많이 나온 순으로 다운을 받아 신중하게 mp3에 담았다. 그렇게 나는 너바나, 레드제플린 그리고 린킨파크 등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격동의 고등학생을 누구보다 파괴(?)적인 음악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오타쿠적인 요소는 골고루 갖추고 있는 나였기에, 그냥 락밴드에서 끝나지 않고 엑스 재팬, 라르크엔씨엘 등의 노래도 듣기 시작했다. 특정 아이돌의 세대가 아니었던 나의 고등학교 3년은 국내외 락밴드와 일본 문화로 채워졌다. 자우림, 크라잉넛 등 당시 인기 있었던 밴드들을 필두로 앞 시대, 그리고 방송활동을 하지 않는 인디밴드들까지 섭렵해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때 이후로 단 순간도 아이돌 덕질을 쉬지 않았던 내가 거의 유일하게 특정 아이돌이 아닌, 장르를 좋아했던 시기기도 했다. 그렇게 락에 심취한지 6년, 어른이 된 후 처음 간 콘서트는 오아시스의 내한공연이었고, 3년 후 나는 라디오헤드의 공연까지 보고 나의 락덕질은 조금씩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락 좋아하세요?


성인이 된 후의 락을 듣는 것은 덕질의 영역보다 자연스럽게 어딘선가 흘러 나오는 음악의 영역에 가까웠지만, 이마저 사라지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후크송의 걸그룹의 등장이었다. 

바야흐로 시작된 텔미의 시대. 중독적이고 즐거웠다. 노래 이외의 엔터테이너적인 요소가 많아 듣고, 부르고, 즐기는 삼박자 모든 것이 잘 맞았다. 그렇게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밴드 음악은 조금씩 사라졌다. 


요즘은 왜 락음악을 안 들을까?에 대해서 분석한 글을 본적이 있다. 내용은 생각이 안나는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보니 시끄러운 걸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글에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아이돌 음악은 조용조용한가? 내가 좋아하는 SM 스타일의 음악은 전혀 얌전한 스타일이 아니다. 돈냄새 가득하고 사운드가 꽉꽉 차 있다. 그리고 마치 무선 이어폰 이전엔 음악을 이어폰으로 듣지 않은 것 마냥 분석하는데 ‘워크맨'시절에도 음악은 이어폰으로 들었다. 요즘 다들 쓰는 블루투스 이어폰 이전에, 충전을 하지 않아도 띠링-하는 연결음이 들리지 않아도 그냥 선을 잇는 것만으로도 음악이 나오는 고도화된 문명, 유.선.이.어.폰.이 있었다. 그 어떤 것도 그저 비겁한 변명이다. 그냥, 안 듣는 것이다. 그냥. 


그런데, 요즘은 조금 이상하다. 어디선가 락의 순풍이 불어온다. 락페스티벌에서 말랑말랑 페스티벌로 바뀌던 각종 페스티벌에 락밴드들이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니, 점점 그 이름이 메인 스테이지로 올라오고 그 수도 많아지고 있다. 그 시작이 누구부터인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내 플레이리스트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울리는 K-POP 댄스 음악으로 가득했던 내 플레이리스트에 새소년이 추가됐다. 더 로즈와 실리카겔, 설의 노래가 있었다. 

그리고 아이돌과 밴드를 다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그대로 저격한 ‘밴드돌'이라는 이름의 밴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벅차오르는 스타일의 노래' 잘 부르는 데이식스, 루시와 같은 밴드들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내 귀를 잡아챈 그룹들은 ‘원위’나 ‘엔플라잉’정도가 있다. 


데이식스도 락밴드냐? 라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밴드라고 다 락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그들이 락밴드보다는 아이돌에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그룹 결성 자체가 아이돌과 똑같은 시스템으로 생겼기때문이다. 그래서 락밴드와 아이돌의 합성어인 ‘밴드돌'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락 밴드가 나온지 몇 년인데, 이런 것 쯤 바뀌어도 추가되어도 뭐가 문제가 되는가? 비틀즈도 시대를 풍미하는 아이돌이었다. 또, 이렇게 악기를 다루면서 노래를 부르고 이 벅찬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락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어릴 적 오아시스의 ‘ live forever’를 들으며 벅차했던 나는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들으며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죽을 때까지 얘기할 것 같은 라디오헤드 공연을 봤던 충격을 기억해보자. 10년도 더 지난 그 날. 지금은 없어진 지산 락 페스티벌 현장. 1차 라인업이 발표 된 그 날 나는 한 번도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지산 락 페스티벌을 가기로 결심했다. 락페스티벌 현장은 너무 더웠고 더웠고 더웠다. 락페스티벌은 장마기간에 보통 열려서 단 한 번도 비가 안 온 적이 없었다고했는데, 그 때의 지산은 비가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내가 자리 잡은 곳 옆 그늘엔 돗자리가 크게 펼쳐져 있었는데, 한 부부가 일찌감찌 와서 자리를 잡고 아기들과 놀고 있었다. ‘아이’도 아니고 아기인 이유는 정말 그 분들은 유모차를 끌고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몇 살인지 얼만큼 컸는지도 모르겠지만, ‘아기’였다고 생각한다. 그 아기들은 돗자리에 누워 자고 있었고 엄마와 아빠가 교대로 아이를 보며 음악에 몸을 맡겼다. 무대에서 나오는 조명, 레이저, 그 광기어린 상황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도, 그들을 돌보며 공연을 보는 부모도 대단했다. 공연이 무르익을 때 쯤 도착한 정장을 입은 여자분은, 손가락에 신고 온 슬링백을 걸고 맥주를 마셨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담배를 폈다. (금연이었지만, 공간 자체가 야외라 잔디밭이 아니면 다들 한 개피 정도씩은 폈다. 물론 그러면 안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락페스티벌 현장이니까 이해해주시라!)  그 장면만은 10년도 더 지났지만 잊혀지지 않는다. 저항이 별건가, 신발을 신고 다니는 길에 맨발로 서서 평소였음 길에서 마시지 않을 맥주를 마시는게 저항이지.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지루하다면 음악 하나로 기분 전환이 가능한 것, 지금 당장 달려나갈 수 있는 기분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바로 밴드 사운드고 락이지. 


몇 년 전, 헤비메탈 페스티벌에 가기 위해 양로원을 탈출한 분들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이게 바로 내가 바라는 늙음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꿈꾼다. 락 페스티벌에 가는 70대 할머니를, 그리고 소심하게 말해본다 rock will never die!



이전 05화 여행복기 - 나는 왜 홍콩이 별로였나?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