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간 록페스티벌들
다들 록페스티벌, 록페스티벌이 아니더라도 처음 갔던 음악 페스티벌을 기억하는가?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음악페스티벌은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이다. 내가 최초의 ‘록’음악이라는 장르를 기억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제 20년도 더 지난 일이라 기억나는 건 별로 없다. 낮의 광안리는 후텁지근했고 당시 자아가 자리잡지 못한 시기였던 나에게 거기(?)있는 사람들은 다 미친 사람같았다. 음악도 그랬고, 옷도 그랬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충격의 소용돌이였다. 당시 나는 한 아이돌의 팬이었고, 그 때 알게 된 언니 & 친구들과 그 페스티벌을 갔는데 평소와는 다른 언니들의 옷에 정말 놀랐었다. 어떤 차림이었는지 뭣도 기억나지 않고 그냥 ‘세상에나!’라는 잔상만 남아있다. 음악도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관중들이 미친 사람 같았다. 이렇게 여러 번 말할 정도로 놀랐었다.
공연을 처음 갔던 건 아니었지만, 그 어떤 공연도 이렇게 충격적이진 않았다. 지금이야 팬들끼리 재미로 드레스코드나 컬러를 맞춰 입고 공연장을 가지만(가수가 좋아하는 색이나 팬덤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룩을 입는다. 물론 강요는 아니다.) 그 땐 그렇게 합을 맞추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맞춘듯한 옷 스타일과 화장과 그 광기 어린 맑은 눈의 강렬한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 때 나는 ‘Pia’와 Nell 등을 알게 된다. 닥터코어911이나 트랜스픽션, 껌엑스같은 밴드들도 이 즈음 알게 된 듯 한데 페스티벌에서 알 게 된 건 진 확실하지 않다. 한국 록 밴드를 기억해 와서 음악을 들었다는 것, 역시 페스티벌은 노출수에 비해 도달과 전환이 높으며, 나는 전환된 사람 중 한 명인 것이다.
무료라는 장점도 있었지만, 부산에서 진행하는 유일무일한 록페스티벌. 뻥 좀 보태서 비수도권 유일의 록페스티벌이기었기에(아닐수도 있습니다) 30년간 부산에 살았던 내가 가장 자주 간 페스티벌이기도 하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각종 민원에 휩쓸려 장소를 두 번 옮겼다.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 하고 있는 삼락공원으로. 지금과 달리 다대포까지 지하철이 개통하기 전이라 다대포에서 열릴 땐 가지 않았으나 삼락공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두세 번 정도 더 갔던 것 같다.
예전에 한 웹툰에서 부산 록 페스티벌을 다룬 적 있었다. 부산 록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그 웹툰을 한 번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titleId=478261&no=8&week=finish) 광안리에서는 딱히 생각나는게 없는데, 삼락공원으로 옮기고 나서 나에게도 무척 인상적이었던 점이 몇 개 있다. 이제 나도 생활 반경을 수도권으로 옮겨 유료화된 후엔 가 본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과 다를 순 있다.
하나, 음식 사 먹을 곳에 사제(?)포장마차가 깔려 지역 축제 느낌이 물씬난다는 것이다. 파전, 번데기, 핫도그, 닭꼬치 등을 파는 빨간 파란 포장마차가 입장하는 길 따라 사람들을 반긴다.
둘, 무료인만큼 연령층이 정말 다양한 편인데, 그늘에 어르신들이 부채를 파닥이며 앉아 세발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보고 있는 건 항시 볼 수 있는 장면이며 진짜 ‘찐’ 아재들부터 혈기 넘치는 십대 이십대까지 가득한 곳이다. 이 장면이 다른 록 페스티벌과는 다른 부산 록 페스티벌만의 장점이 묻어있는 차별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유료로 볼 수 없는 장면이 되어 아쉽기도 하다.
셋, 간척지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다. 삼락공원에서 하는 록 페스티벌을 간다면 다같이 뛰는 타이밍에 잠시 뛰지 말고 꼭 바닥을 느껴보는 것을 권하고싶다. 바닥에 발을 대고 가만히 있으면 땅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배에 탄 것처럼 움직인다. 이 울렁거리는 땅의 울림이 부산록페스티벌을 더 미치광이(?)처럼 만드는 것 같다.
여전히 록 음악 위주의 라인업이 주를 이루지만 그럼에도 시대의 변화를 많이 따르고, 또 유료화가 되며 많이 말랑말랑해졌다고 하던데, 요즘 흙바닥에서 뒹구는 록 페스티벌은 거의 없으니까, 흙먼지에 휩싸인 관중들에게 냅다 물을 뿌리는 페스티벌은 없으니까, 분명 부산 록 페스티벌에서만 오늘 즐거움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갔던 유료 록 페스티벌은 지금은 없어진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이다. 2월쯤에 헤드라이너 - 페스티벌에서 당일 대표 공연으로 내세우는 아티스트 -가 발표되었다. ‘라디오헤드’ 와 ‘스톤로지스’ 딱 두 밴드 이름만 떠 있었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조건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얼리버드 티켓을 끊었다. 처음 타 본 이천행 버스, 모두가 행선지가 같았다. 그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친해졌는지! 택시비 엔빵, 그럼 나올 때도 같은 버스일테니 만나서 나오실래요? 서로를 알 필요도 없이 본론만 나누며 친해지는 사람들. 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일 줄 알고 번호를 교환하고 연락을 했을까? 분위기에 취해(아직 페스티벌 장소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나사가 풀렸음이 분명하다.
벌써 12년 전이지만, 라디오헤드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당시 지산 록 페스티벌은 전체적으로 모든 라인업이 좋았다.
‘버스커버스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었다. 짧은 공연 시간에 멘트 한 마디 없이 노래를 부르던 장범준은, 12년 후 지금은 티케팅도 어려운 가수가 되었고 나는 12년 전에 본 장범준이 여전히 마지막 장범준이다. 그 때, 어떤 무대를 기다렸더라? 기다리다가 들었던 글렌체크는 세련된 사운드는 물론이고 그 사운드에 어울리지 않는(?) 다소 체조스러운 안무를 췄었다. 그 안무로 글렌체크라는 그룹이 각인되었다. 60’s cardin’라는 노래였는데, 최근 영상에서 이 노래는 여전히 같은 떼 체조를 춘 다는 것을 알았다. 또, 아울시티라는 그룹이 왔었는데 good time 이라는 노래가 여기저기 많이 나오면서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공연이 끝나고, 아울시티 내한 공연 광고가 나오는 데 흥에 취한 사람들이 광고 노래에 맞춰서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었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록 페스티벌의 매력이기도 한 것 같다.
요즘 난 페스티벌을 가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작년 온 가수가 올해도 온다 그런 느낌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록 페스티벌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페스티벌도 많아졌고, 라인업도 비슷비슷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저 이유 때문에 선뜻 가기에 망설여지기도 한다. 표값도 한두 푼이 아니다. 페스티벌은 적자라고 하는데, 나도 적자다. 이렇게 비싸지만 모두가 적자라니 대체 돈은 누가 번 단 말일까? 이제 안 간지 꽤 오래니 한 번 가볼까? 하고 찾아보면 올해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24만원, 서울 재즈 페스티벌은 42만원이었다. 무형적인 것에 경제적인 논리만을 들이댈 순 없다지만 그렇다고 선뜻 쓰기에 적은 돈도 아니다. 그 외에 부수적으로 들어가게 될 돈을 생각하면 동남아 항공권 비용을 내게 된다. 라인업에 한 번 쫙 바뀌면, 갈거야. 라고 다짐하며 기회만 보는 것이다.
요즘 밴드들의 음악을 들으면 곧 이 비용을 감내하고 결제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20주년을 넘기며 여전히 멋진 밴드인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들이 아닌 다른 헤드라이너가 올라오는 날을 기다리며 나는 매 해 페스티벌 라인업을 확인한다. 록 페스티벌에 가기 위해 양로원을 탈주한 할아버지들처럼 여력이 되는 한 나는 매년 출현 가수를 체크하며 돈을 쓸 준비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