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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경 May 25. 2024

여행복기 - 나는 왜 홍콩이 별로였나? (3)

홍콩여행, 뭐가 문제였지?

이제 정말, 홍콩을 온전히 즐기는 날.  모든 관광객이 가는 곳에 가보리라! 중경삼림에 나왔던 에스컬레이터를, 그 맨션을 가보고 모두가 사먹는 밀크티와 에그타르트도 사먹을테야! 시간이 된다면 재즈바도 가겠다 다짐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오늘도 아침을 먹기위해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곽준빈의 세계 기사 식당에서 봤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아침부터 차와 딤섬을 먹는 곳을 가고싶었다. 아, 어제 갔던 곳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있긴 했지만 빵보단 딤섬을 파는 곳을 찾았다. 지역이름+飮茶를 검색하면 그 동네 딤섬집들이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호텔 근처의 딤섬집을 선택했다.

알고 있는 차 이름이 보이차밖에 없어서 자스민차를 마시고싶은데 어떡해야하지 고민했지만 우리가 관광객인걸 눈치 챈 사장님은 묻지도 않고 아무거나 내주셨다.

정말 맛있었지만, 여기서 나는 간장 단맛에 백기를 들었다. 더이상 간장으로 간을 맞춘 음식을 먹고싶지 않았다. 나에겐 매운 것, 새콤한 것이 필요했다. 골고루 시켜먹고 우리는 이 느끼함을 내려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아서 길을 나섰다. 이제 어느정도 지리에 익숙해져서 동네 산책이 낯설지 않았다.


딤섬과 커피. 오전부터 포만감 가득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모두가 아는 그 홍콩을 향했다. 트램을 타고 모두가 가는 곳으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는.. 에스컬레이터였다. 내가 알던 그 비주얼과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당혹스러울 정도로 동네 사람들의 이동수단이었다. 에그타르트도 내가 아는 에그타르트였다. 맛있는 에그타르트. 내가 아는 가장 맛있는 맛 보다는 못하지만, 어디에서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것. 그리고 밀크티도.. 내가 아는 밀크티였다. 내가 아는 번화가였다. 사진을 많이 찍는 그 길도 많이 낡았지만, 그냥 그 길이었다. 관광객들밖에 없었다. 다들 여기서 뭘 하는지 묻고 싶었다. 재미가 떨어졌다. 그 와중에 홍콩 기념품 샵에 들려서 정말 보자마자 ‘홍콩’을 알수 있을 법한 기념품을 샀다. 우리가 산 기념품은 꽤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보다는 호텔에 두고 오기를 택했다. 호텔까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찾아보니 걸어서 17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가까웠다고? 주저없이 호텔까지 걷기 시작했다.


들고다니기 다소 무거웠던 기념품

번화가와 약간 떨어지니 보는 재미가 조금씩 살아났다. 작고 귀여운 상점부터 카페, 그리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같은 슈퍼같은 것들. 공원도 두어개 지났다. 이쯤 되니 아쉬워졌다. 아까 그 번화가에서 헤매지말고 여기서 커피 마실걸! 여기서 밥을 먹을 걸! 오래된 이야기가 묻어있을 것만같은 공간이 가득했다.

호텔에 짐을 두고 더위도 피하고, 이제 다시 나가야하는데 번화가에 간 지 반나절만에 나는 번화가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여기와 뭐가 다를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도 한 번도 안 가봤으니 라는 생각으로 침사추이를 향했다. 정 할 게 없으면 박물관이라도 가자라는 심정으로.  


침사추이도 그저 그랬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청킹맨션은 생각보다 외관이 너무 깨끗했다. 쇼핑몰들은 쇼핑몰이었다. 트램에 래핑되어있던 전시가 기억이 났다. 빠르게 검색해서 어떤 전시인지 확인했는데, 내가 한국에서 이미 봤던 전시였다. 아시아 순회중이었나보다. 또다시 실망을 했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기에, 밥을 먹으면서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딤섬…? 털게….? 우리의 선택은 마라탕이었다. 매운게 먹고싶으면 여기로 가라! 하고 홍콩 친구가 가르쳐준 곳이었다. Tamjai samgor’라는 체인점. Samgor가 붙어야 매운 음식을 판다며 삼거를 강조했다. 엄청난 인파를 뚫고가서 만난 매운 음식집. 첫입에 동생과 나는 살것같아!를 외쳤다. 밥을 국물에 말아서 재료 가득 올려 먹으니 삼일 묵은 간장 단내가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매운 음식도 먹었겠다, 기운을 차리고 야경의 백미라는 심포니 오브 나이트를 기다리며 침사추이를 남북으로 길게 훑어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소품가게부터 화려한 조명이 켜진 홍콩의 밤거리까지. 뭔가 홍콩하면 생각했던 그 길거리를 가로지르며 간판이라던가 복잡한 도시 풍경을 여기서 간접적으로 하나씩 봤다. 마침내 야경을 보는 스팟에 도착했을때쯤 호텔을 장식한 샤넬 오브제들을 보며 ‘오…샤넬!’ 이라 생각했지만 이마저도 별 생각 없었다. 비교를 안 할 수 없는게 몇 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서울 백화점들이 화려하게 변신을 하는데, 그 것을 최근 몇 년간 즐겁게 봤던 내가 내뱉을 수 있는 감탄사는 ‘오…샤넬!’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구나, 그렇구나 싶은 장식들.


야경을 본 감상을 말하자면.. 그래 야경이군… 야경을 즐기기에 나를 가로막고 있는 바다가 너무 넓었다. 고층빌딩은 맞는데, 그 고층을 신기해하기엔 너무 멀었고 화려한 야경을 만끽하기엔 서울의 야근이 만들어주는 야경도 아주 가관, 아니 장관이다. 산 위에서 보는 야경을 안 봐서 그렇다! 라고 누군가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확신한다. 그 빅토리아 피크인가 하는 곳에서 보는 야경도 부산의 황령산, 서울의 남산 야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여행에서 어디를 가야해 라고 정해진 곳보다 아침에, 저녁에 발길 닿는대로 다녔던 동네 풍경이 재밌었다. 진짜 동네 사람들이 가는 것 같은 마트 구경 그리고 뜬금없이 위치한 수산시장 구경이 즐거웠다. 번화가 구경을 포기하지 못해 결국은 하지 못했지만, 등산 그리고 스케이트 보이 구경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다음에 홍콩을 간다면 경유지라 들르는 정도로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말의 아쉬움도 없다.

머쓱한 야경을 구경하고 오면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홍콩, 재미없다. 뭘 즐겨야 할 지 알 수 없다. 어떤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하는지 모르겠다.


홍콩 영화 몰라? 중경삼림! 무간도! 홍콩 영화를 말하기에는 가장 최근에 나온 무간도3가 2004년에 나왔다. 역사라고 말하기엔 너무 21세기고 진행형이라고 말하기엔 그 때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다. 애매하게, 홍콩은 어딘가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이전 홍콩을 모르기에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원래의 홍콩다움을 느낄 수 없다. 그게 없어진거라면, 그걸 대체할 거리가 있어야했던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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