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전반기 3위로 마감. 마지막은 92년.
92년이라니,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숫자다. 92년에 태어난 사람이 올해 생일 지났다면 33살이다. 올해 롯데의 좋은 기록들은 대부분 그렇다. 기본 300일, 놀랄 것 없는 몇 백일만의 기록, 세상에나 소리가 절로 나오는 몇 년만의 기록이 나오곤 했다. 나는 매 해 거의 빠짐없이 야구를 보고 있고, 못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별 것 아닌 것이 ‘기록’이 될 정도로 못했다는 건 놀라울 지경이었다.
별거 아닌 것 중에 가장 별스러운 기록은 엘지 삼 연전 위닝 기록이다. 3연전 중 2승을 가지고 오는 위닝시리즈, 3경기를 다 가지고 오면 스윕이라고 한다. 롯데가 엘지를 상대로 가지고 온 마지막 위닝은 23년 4월이었다. 엘롯라시코라며? 항상 치열하고 어이없는 경기를 해서 붙은 별명이지만, 치열하고 어이없는 경기를 하지만 항상 결과는 롯데만 처맞고 있었다. 두 번째 글에 비슷한 내용을 적었었다. ‘엘롯라시코는, 진기명기한 경기가 펼쳐지지만 언제나 승은 엘지가 챙겨가는 잔혹한 시리즈’라고. 나는 롯데가 워낙 못해서 내 체감인 줄 알았는데 수치로 보니 정말 아찔했다. 믿기지 않아 기록을 좀 더 뒤져보니 롯데는 엘지 상대로 승률이 겨우 3할이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엘지와의 경기를 3번 봤고, 한 번 이겼으니 나름의 데이터(?)를 잘 따르는 듯 하긴 하다.
지난 9일 롯데는 또 새로운(?) 기록이 나왔다. 올 시즌 첫 끝내기. 롯데는 올해 끝내기로 이긴 적이 없단다. (그럼 개 쳐 맞기만 했단 말이야?!!?) 아주 열받는 경기가 팽팽하게 이어지다가 인내심을 끊어먹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04년생, 자칭 상남자. 모두의 중3. 이호준이 끝내기 안타를 치며 경기가 막을 내렸다. 첫 끝내기 다운 시원한 안타였고, 상남자다운 쇼맨쉽이었으며 중3답게 190이 넘는 선수에게 매달려 워터파크를 맞이했다 – 끝내기를 치거나 첫 승 등 기념할 만한 상황이면 자축의 의미로 물폭탄, 물세례를 한다-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는 이곳 이 자리에서 승리를 외친다’ 노래 가사 그대로 경기는 고난과 역경 그 자체였고, 그럼에도 롯데 팬들은 그곳 그 자리에서 승리를 외쳤다. 그래도 이렇게 재밌게 야구하는 놈들은 롯데밖에 없어를 외치며, 경기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아쉬운 내용은 뒤로한 채 승리를 만끽했다.
그렇게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승리했지만, 다음 날 경기는 그렇지 못했다. 이제 다른 응원가 가사에서 이 날 경기를 찾아야 한다.
‘그 어떤 고난과 시련이 오더라도 우리는 외친다. 뛰어!!!'
그 어떤 고난과 시련이 오더라도 우리는
그 어떤 고난과 시련이 오더라도
그 어떤 고난과 시련!!!!!!
그 어떤 고난과 시련만 경기 내내 맞이하다가 경기가 끝나버렸다. 타선은 병살로 완전히 무너졌다. 전원 안타 기록이 있다면 전원 병살 기록도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병살타 1위 자이언츠는 병살 앞에 자폭했다. 초구부터 휘두르는 방망이는 고난이었고, 적재적소에서 터지는 병살타는 시련이었다. 병살만큼 연투도 많은 자이언츠답게, 연투를 이어가던 투수들은 무너졌고 급기야 한 선수는 절뚝거리며 두 사람의 부축을 받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상반기 3위는 엄청난 기록이지만, 그에 따른 희생도 큰 느낌이다. 아무리 결과가 좋다지만 새는 구멍을 이대로 둬도 되는 걸까? 한 해설은 지금 2군에서 올라 올 야수들은 있지만 투수는 없다는 우려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하반기, 어쩌면 진짜 고난과 시련 그리고 역경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짧은 올스타 브레이크가 시작되었다. 좀 못하고 있어도 올스타에 나간 선수들은 즐거움을 만끽했으면 좋겠고, 다른 선수들은 훈련도 좋지만 적당히 하고 집에서 잘 쉬었으면 좋겠다. 작년처럼 번트 연습 같은 거 하지 말고... 작년 올스타에 번트연습하고 후반기에 삼중살 두 개 당한 거 잊지 않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