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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스타브레이크 너무 길다

기다렸는데, 나는 야구밖에 없는데, 마음을 다 줘버렸는데

by 박현경


어린이날 9연전을 그렇게 욕했었다. 물론 이건 욕먹을만했다. 9연전 이후 비가 왔고 비 온 주말 취소된 경기를 더블헤더로 진행했다. 시즌초부터 진행된 극한의 스케줄이었다.

우리 팀은 지쳤다. 100점으로 지고 있어도, 이기고 있어도 징글징글한 팀이라는 걸 보여주자는 감독의 말처럼 징글징글한 경기를 이어갔다. 경기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면 전민재, 레이예스, 전준우를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날 이후 전민재는 단 한 경기에서만 빠졌고 레이예스와 전준우는 대주자가 나갈 때가 아니면 교체되는 일이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올스타전 휴식 주간이었다. 지난주엔 푹 쉬라고 했던 거 같은데 사람은 언제나 과거를 잊기 마련이다.


대체 야구 언제 함?

야구 안 하면 저녁에 뭐 함?


야구를 하지 않았던 일주일, 저녁이 너무 길고 시간이 많았다. 저녁에 할 게 없었다. 항상 유튜브를 보고 티브이를 보고 똑같았는데 4개월 간 야구에 집중했더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죄다 바뀌어있었다. 롯데 유튜브, 티빙 하이라이트, kbo 하이라이트 그리고 채이(엘지트윈스 박동원선수 딸) 영상. 나는 또 별다른 수 없이 영상을 보고 또 본다. 볼 때마다 재밌다.


박민우의 휘랄이 웃겼다. 서른 넘어서 아직도 고등학교 부심을 부리는 거 웃기긴 하지만, 그것도 웃기고 휘랄도 웃겼다. 이제 야구팬들은 휘문고 어딨는지 다 알 듯. 한화에서 성심당 빵을 가득 사놨는데 본격적으로 의자 들고 와서 젓가락으로 빵 먹는 두산 선수들도 웃겼다. 역시 먹산은 팬이 아니라, 두산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학계 정설. 채이는 ssg 마스코트 랜디와 극적으로 친해졌지만, 끝까지 턱돌이와 친해지진 못했다.

퓨처스 친구들도 뻘하게 터졌다. 보통 카페에서 뭐 드세요?라는 질문에 커피 외의 이것저것을 대던 롯데 얼라들. 생각해 보면 다 십 대 후반 이십 대 초반인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못 먹는 거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나도 그땐 아이스아메리카노 못 마셨다. 아이스티, 초코우유 줄줄 대더니 커피차 앞에서 얼박사 통일. 더울 땐 역시 얼박사지.


수비 명장면, 최고의 경기도 둘러봤다. 대망의 목요일 드디어 후반기가 시작하는 날이지만 날씨가 심상치 않다. 이제 우리나라는 장마가 없고 동남아 같은 기후라더니 사람좋아를 외치는 폭우 녀석은 출퇴근, 점심시간에만 퍼부었고 사람을 대체 얼마나 좋아하면 이렇게 퍼부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비가 왔다. 잠실행 버스 안. 버스가 강남에 닿기도 전에 그라운드 사정으로 인한 취소 공지를 확인했다.



아, 오늘만 기다렸는데 이제 뭐 하지? 또 할 게 없어졌다. 나는 그냥 롯데 유니폼 입고 버스를 탄 사람이 되었다. 재빠르게 유니폼을 벗고 야구장을 조용히 지나쳐 집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으며 또 유튜브를 헤맸다. 뭘... 뭘 봤더라? 이제 온갖 은퇴한 선수들의 유튜브를 봤다. 유희관 겁나 웃겨, 윤석민 말 잘해. 박세웅 윤석민 해설 다 들었나? 꼭 뼈에 새겼으면 좋겠다. 야구가 없으니 온갖 야구 관련된 것들만 찾아보고 있다.


오늘은 빨리 취소를 알린 두 경기 빼고는 다 열릴 모양인가 보다. 진짜 시작이다. 후반기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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