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이 졌을 때 가장 기분이 나쁜 날은 언제?
야구팬들이 졌을 때 가장 기분 나쁜 날은? 일요일. 그렇면 두 번째 기분 나쁜 날은? 화요일. 그렇다면 세 번째는? 일요일, 화요일 다 졌을 때.
2경기 졌을 뿐인데 체감 3경기는 진 듯한 느낌이다. 다른 팀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롯데는 지는 날이면 유튜브 자체 컨텐츠도 업로드 하지 않는다. 그럼 일요일 밤부터 화요일 저녁까지는 또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강제로 가지게 된다.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144경기가 없는 날의 삶.
이번 일요일-화요일은 유달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 이유는 내가 일요일, 화요일 두 경기를 모두 직접 가서 봤기 때문이다. 일요일 불지옥은 유달리 강렬했다.온도도 높고 슾도도 높았다. 3루에 가까운 외야자리는 아주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의자에 도무지 앉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리다 전광판 근처 그늘을 발견했다. 그늘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데, 여기만 사람이 없더라니 이유가 있었다. 전광판 반대편, 그러니까 원정 외야쪽에도 엘지의 스피커가 설치되어있었다. 엘지도 워낙 팬이 많은 구단이다보니 3루 외야쪽에도 앉는 팬들이 많아 설치를 해뒀나보다. 하지만 오늘은 롯데 경기. 나는 쉬어가야할 타이밍에(?) 음악이 나오니 귀가 남아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원정 응원의 설움인가.
고개를 들어 반대편 자리를 보면 출입구를 통해 바깥 하늘이 보였다. 파란 하늘 그리고 역광으로 사람들의 음영만 보이는 게,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같았다. 그림같은 야구장이었지만 경기는 그림처럼 마냥 아름답진 않았다. 지지부진한 경기였다. 요즘 엘롯라시코는 명성에 비해 굉장히 깔끔하고 집중력 높은 야구를 보여준다. 예전엔 아주 한심하고 이김을 떠먹여주다 엘지가 먹었다면, 이젠 꽤 치열하게 경기하고 엘지가 이긴다. 이 날도 확률의 이변을 만들지 못하고 엘지가 이겼다. 해가 질 때쯤 우리의 자리로 돌아왔고 무슨 응원가를 불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너무 지쳤다. 생각나는 건 엘지 문보경 응원가밖에 없었다.
그리고 화요일, 4위와의 승차가 나지 않는 절박한 상황에서 키움을 만났다. 한 키움팬이 고척을 갈 때면 ‘타 구단 팬들의 승리를 확신한 표정’을 본다. 라는 트윗을 한 적이 있었다. 과연 롯데도 그럴까?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다. 이전 키움전에도 느꼈지만 롯데는 키움전에 그다지 강하지 않다. 데이터를 확인해야 할 것 같아 상대 전적을 체크했다. 깜짝 놀랐다. 올해 9승 3패로 절 대우세다.
...그렇다면 3패 중 2패를 나는 직관을 했단 말인데..?
이런 날씨에 야구를 보는 것은 사랑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이 날씨에도 야구를 쾌적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잇다. 바로 고척 스카이돔. 고척은 돔구장인만큼 참 쾌적하다.
하지만 경기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아주 불미스러운 경기였다. 롯데는 총 5안타를 쳤다. 이것도 1-3번 타선이 4개를 치고 4-9번이 하나를 쳤단다. 6명은 그저 머릿수만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경기가 길었다. 경기가 길만한 내용이 아니었는데 뭐한다고 10시 가까이되서 끝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배가 고팠는데 아직 6회였다. 다 같은 생각이었는지 주전부리 사냥을 나갔지만 떡볶이나 햄버거 등은 다 팔린 상태라 아이스크림만 퍼먹었다.
10시 가까이가 되어서야 끝난 경기. 야구장에서 나오자마자 높은 온도와 습도가 온몸을 덮쳤다. 구일역은 역사가 작고, 사람을 수용하지 못해 지하철 역 직원들이 역에 진입하는 걸 막는데, 시간이 늦자 배차간격이 벌어지며 구일역 진입을 기다리며 온갖 불쾌함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게다가 한 명만 빠져나가도 여럿이 간격을 좁혀오니 손풍기도 부채질도 소용이 없었다. 진 날은 고척에서 집에 가는 길도 유달리 멀게 느껴진다. 패닉의 달팽이를 머리로 부르면서 집을 향한다.
지난주 마지막 경기, 이번 주 첫경기를 불미스럽게 끝내고 시작했지만 나머지 두 경기는 꽤 그래도 만족스럽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오늘 대망의 기아전이 시작한다. 올해 상대전적 열세. 두 팀은 3,4위전. 이번에도 티빙 슈퍼매치가 있나 찾아봤다. 있겠지. 없었으면. 안 했으면. 찾아보니 오늘이다. 슈퍼매치 전패. 속이 뒤집어진다. 이상한 징크스 만들지 말고 오늘은 제발 이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