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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간멈춰 있던 3위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아래로

by 박현경

롯데의 순위가 떨어졌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현재 진행형이다.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더이상 떨어지지 않고 반등하길 바라며 과거형으로 말하고 싶다.


현재 62승 61패, 승이 패보다 하나 많은 승패마진+1로 5위. 작년 이맘때는 승률 5할 이상인 팀이 3팀밖에 되지 않아 4위 정도의 순위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올해는치열한 중위권 다툼속에 5할(승패마진 0)인 팀이 6위인 혼돈에 빠져있다. 3위를 한 달 정도 유지하던 롯데는 어느새 5위가 되었다. 사실 생각보다 높은 자리에 오래 버텨온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마음속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이렇게 선수들을 계속 혹사시켜도 후반기에 버틸 수 있을까?' 7월쯤에는 불펜 혹사에 대한 글도 직접 적었었다. 한 해설위원이 "올라올 야수는 많아도, 투수는 없다"라며 우려했던 말도 떠오른다. 그때는 잘 나가고 있었기에 애써 외면했고, 못 들은 척했다.


그러나 결국 그 걱정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닥쳤다. 무려 22년 만에 당한 12연패. 쌓아둔 승수가 있어 간신히 승률 5할은 유지했지만, 이후 경기 역시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대단한 점은, 초반에 얼마나 잘해놓았기에 12연패를 하고도 아직 5할을 넘기며 중위권 경쟁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때 노렸던 상위권 싸움은 멀어졌지만, 그래도 중위권에서 여전히 다이나믹하게 경쟁 중이다. 3위고, 승패 마진이 여유로울 땐 다른 팀의 결과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우리의 순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팀의 결과가 영향을 미친다. 경기가 끝날 때 마다 순위가 심장 박동처럼 요동친다. 롯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쩐지 그 방향이 자꾸만 아래로 향하는 듯 하다.


길고 긴 연패를 끊었지만, 최근 경기를 보며 작년의 기시감을 느꼈다. 경기 내내 끌려가다가 마지막 회에 반짝 득점하고는 그대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패턴. ‘희망고문’ 작년 내내 보던 팀 컬러가 떠오른다. 9월 2일 LG전도 그랬다. 화력 좋은 LG 상대로 3점만 내줬지만, 우리도 2점을 내는 데 그쳤다. 그것도 9회에서야 얻어낸 점수였다. '내일은 다르겠지'라는 희망만 주고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경기인 kt전은 희망 없는 고문이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선수 멱살이라도 잡고 묻고 싶다.


질 것 같은 경기는 아예 버리는 것도 방법일 텐데, 올해 롯데는 그렇지 않았다. 중반까지 모든 경기를 악착같이 붙잡았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당시에도 판단은 확실히 할 수 없었지만, 초반에 위닝을 많이 쌓는 팀이 결국은 시즌 마지막에 결과를 내는 것이라고 칭찬했었다. 그렇기에 12연패를 하고도 순위 싸움에서 크게 무너지지 않은 것도 맞지만, 반대로 그 악착같음 때문에 체력이 바닥난 건 아닌지 싶다.


선수들의 경험치 문제도 느껴진다. 20대 초중반 선수들이 주축인 롯데가 지금과 같은 압박감, 분위기 싸움에서 덜 흔들릴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실력보다 경기 흐름과 분위기에서 계속 주도권을 빼앗기는 기분이다. 그래서 경력 있는 선수들이 고르게 섞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중간 연차는 없고, 어린 선수들은 성적과 등수에 짓눌려 있다. 보는 나조차 초조한데, 그라운드에 서 있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끔 선수의 얼굴이 크게 잡힐 때 마다 복잡한 심경이 다 읽히는 듯 하다. 궁금해서 다른 팀 나잇대가 어떤 지 찾아봤다. 에이스 80년대 생 선수 그리고 90년대 생들이 주축으로 이끌어주고 00년 이후 태어난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는 바람직한 그래프를 보이는 팀이 있었다. 역시, 이런 팀들은 성적도 좋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선수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모니터를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비친다. 안 될 땐 뭘 해도 안 된다. 나는 회사에서 마케팅을 맡았었는데, 같은 방식을 사용해도 결과가 다를 때가 있었다. 잘 될 때도 안 될 때도, 사실 뚜렷한 이유가 있을 때가 드물다. 시간이 쌓여 이 시기엔 원래 이랬어. 라고 데이터로 만들어 받아 들이는게 가장 정답이었던 때가 많다. 버려야 할 상황을 버리지 못하고 가다 보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 하고 나는 지치고 돈만 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럴 경우 윗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실무 당사자는 결과가 안 좋아지면, 시야가 좁아진다. 이전엔 되는 길만 보였는데 도통 안 되는 이유에만 부딪힌다. 그럼 상사나, 관리자들은 그 늪에서 실무자를 건져 올려야한다. 생각 좀 정리해. 너무 급하게 하지마.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 안 되는 건 버리고 가자. 잘 됐을 때 생각하면서 달라진 점을 찾아보거나, 외부 변수를 찾아보자. 말 뿐이라도 한 발 뺄 수 있는 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돌파구까지는 아니더라도, 버리고 가야 할 것이 보일 것이다. 야구로 치면 ‘무조건 안타를 친다’ 보다는 ‘출루를 한다’라고 생각하면 다른 방법이 있는 것과 비슷한게 아닐까.


지금 롯데는 고군분투속에 ‘안되는 방향’만 계속 보고 있는 느낌이다. 맞는 말은 하지만 닦달하는 임원과 안 되는 길에서 허우적거리는 주임급 이하의 직원들이 안 맞는 시계를 돌리고 있는 기분이랄까. 차라리 틀렸으면 하루 두 번이라도 맞지, 애매하게 늦게 가면서 따라갈 듯 따라갈 듯 타이밍을 못 맞춘다. 우리 회사같은 기시감이 든다. 성적을 떠나 요즘은 퇴근 후 야구를 보는게 괴롭다.


8월로 정규 편성 경기는 끝나고 잔여 경기만 남았다. 3위부터 8위까지 큰 승차 없이 치열한 순위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초중반에 "끈질기다, 악착같다"라는 평가를 받던 롯데의 모습은 희미하다. 다들 뭔가에 씌인 걸까? 12연패 기간, 사직구장 기둥마다 롯데 팬들이 막걸리를 뿌리며 고사를 지내 야구장에서 막걸리 냄새가 진동을 했다고한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모자란 걸까. 팥이랑 소금을 안 뿌려서 아직 악귀가 안 빠져나갔나...?


작년, 재작년을 떠올리면 지금 성적만 해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게 맞다. 하지만 초중반의 경기력을 떠올리면 아쉬움 또한 지울 수 없다. 의심하지 않으려 하지만, 자꾸만 의심이 든다.


롯데의 심장은 계속 뛰어야 한다. 지금처럼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더 높은 곳을 향해, 뜨겁게 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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