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야구는 끝났는데 두 번째 화살을 계속 맞다
지는 날이 많아지며, 매일 챙겨보던 경기를 띄엄띄엄 보기 시작했다. 6시 이후부터 11시까지 꽉 차 있었던 나의 일정은 조금씩 느슨해졌다. 내가 이 시간에 뭐 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니, 3월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야구를 보고 있었다. 144경기. 약 10% 정도를 경기장에서 봤고, 15% 정도는 약속이 있어서 못 봤던 거 같다. 그렇다면 75%는 경기를 보고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108경기. 경기 전 라인업 소개부터, 이기면 인터뷰와 하이라이트도 챙겨 봐야 하니까 한 번 보기 시작하면 5시간. 540시간을 108일 동안 야구를 보는데 썼다. 구단에서 업로드해 주는 콘텐츠까지 봤으니 실제로는 600시간 이상 야구에 썼을 것이다. 지금부터 연말까지는 크게 야구에 쓰는 시간이 없을 테니 1년에 600시간. 하루에 거의 2시간 정도 야구를 본 것이다.
이런 계산이 서면 다른 계산으로 머리가 돌아간다. 이 시간을 공부하는데 썼더라면, 운동하는데 썼더라면. 하지만 이런 계산은 무의미하다. 아마 야구를 보지 않더라도 저 시간을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야구를 보지 않고 있지만, 공부나 운동에 쓰는 시간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팀 야구가 끝난 지 약 2주. 저녁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크게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뭘 할지 유튜브 첫 화면을 헤매는 시간이 조금 늘어났을까? 빨래를 개며 틀어놨던 야구 대신 드라마나, 각종 영화들을 ‘찍먹’하고 있다.
그렇게 추석 연휴가 찾아왔다.
한 달 전의 계산이라면 와일드카드 결정전 정도는 가능했다. 두 달 전의 계산이라면 연휴는 휴식일이고 연휴가 끝난 직후 준플레이오프 경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롯데는 그렇지 못했다. 한 달 반 만에 찾아 간 야구장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올해 부산에 올 때면 항상 야구 일정을 꼭 추가했었다. 올해 내가 본 야구장은 항상 활기차고 북적북적했다. 하지만 막판 엉망진창이 된 성적과 함께 문이 닫힌 야구장은 평소보다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사직야구장’이라고 빛나는 LED조명이 얄밉게 느껴졌다. 연휴 동안 추석 감사 인사 같은 건 업로드되지 않았다. (거의 모든 구단이 추석 콘텐츠를 업로드했다) 10킬로를 달리는데 한 시간이 걸리는 2군 선수들이 업로드되어 분노를 샀고, 마무리 훈련을 지켜보는 콘텐츠가 올라왔다. 훈련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나는 아직도 올 시즌 롯데자이언츠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작년엔 다른 팀의 포스트시즌 경기를 보며 화나지 않았다. 그저 재밌었고, 긴박감이 넘쳤다. 지금은 kbo를 떠난 쿠에바스의 one more! 은 정말 포스트시즌경기 같은 느낌이 나서 수십 번 돌려봤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의 야구가 끝난 지 한참이지만, 계속 속에서 뭐가 치밀어 오른다.
와, 이율예 봤어? 걔 홈런만 3개야. 롯데 오면 바로 홈런 9위야. 이재현 수비 뭐냐 미쳤다. 저기 투수는 어쩜 저런데 공을 넣냐.. 우리 플옵 진출 확률 90%였는데, 참나. 분노가 계속 가슴속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내가 항상 마음속에 새기는 말이 있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자.’ 불교의 가르침에 나오는 말이다. 첫 번 째 화살은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서 순간을 떠올리며 화나 감정을 더 키우면 두 번째 화살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 속에 머물지 말고 지금 할 일을 할 것. 과거를 털기 위해 나만의 방법도 터득해 놨고, 그동안 자주 맞지 않으며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야구는 나에게 계속 화살을 쏜다. 활시위가 멈출 줄을 모른다. 그것도 빗나가는 게 아니라 정확히 아픈 곳에 엑스텐을 꽂는다. 잘했던 순간, 못했던 순간, 다른 팀의 성적과 우리 팀을 비교하기 등 다른 팀 야구를 보면서 우리 팀의 결정적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지나간 경기들이니 돌이킬 수 없지만 그때 왜 그랬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하고 내가 고치지 못하기에 마음에 더 답답함이 남는다. 체력이 문제인가? 체력을 키워라. 기본기가 문제인가? 연습을 해라. 선수가 문제인가? 올해 칸초 많이 팔았잖니? fa시장에서 사 오너라. 근데 이것들 말고도 다른 문제가 보이는데, 개선 방법이 없는 게 아닌데 왜 개선하지 못하는지. 주체는 롯데인데 계속 나에게 화살을 쏜다.
롯데의 올시즌은 끝났고, 예전과 다름없는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롯데는 달라지지 않았고, 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야구를 하지 않으니 오히려 집은 평화로운 것 같기도 하다. 조금 즐거움은 덜하지만. 글을 쓰면서도 나는 계속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되뇐다. 물론 잘했던 순간도 있다. 하지만 계속 생각하게 된다. 저렇게 선배들이 러닝을 강조하는데 10킬로를 저렇게 달려? 아니 어떻게 일주일을 쉬란 말을 해? 굳이 영상을 찾아보며 계속 화를 끌어올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진짜 나는 올시즌 롯데와 굿바이를 하려고 한다.
계속 응원할 내가 너무 어이없긴 한데, 나는 내 인생도 응원하니까. 너희도 응원할게. 내년엔....... 혹시 내년에도 고만고만한 모습으로 나타날 거면 때려치우자 진짜. 니들은 엑셀도 배우지 마. 사무직 만만하게 보는 거 짜증 나니까. 그 몸으로 다른 장점을 살려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