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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경 Aug 16. 2022

누군지도 모르는 옆집 세입자님, 잘 지내시나요?

이웃의 안부가 궁금한 건 괜한 오지랖인걸까?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다. 혼자 살고 나서 그 의미를 더 깊게 깨닫고 있다. 처음 짧게 살았던 봉천동 원룸의 옆 집 사람은 저녁이면 그렇게 기타를 쳤었다. 늘지도 않았다. 그 때를 제외하고는 난 이웃들은 참 잘 만났던 것 같다. 

시끄러운 사람들도 있지만 매일 큰 소음이 나는 것이 아니라 단발성으로 끝날 때가 많았고, 발망치 소리도 없었다. 지금 사는 집도 이전에 살았던 집과 비슷한 수준으로 소음이 적다. 간혹 복도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그 소음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금방 사라진다. 

내가 꼭대기층을 살아서 층간소음이 적은 것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집이 소음에 취약하다는 느낌을 받진 않는다. 뉴스에 나오던 벽을 두고 가위바위보가 가능한 집은 적어도 아니다. 그리고 내가 발소리를 조심하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집 현관문에 주의하라는 내용이 안 붙은 거 보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옆집 소리도 잘 안 들린다. 문 여닫는 소리와 배달 소리만 날 뿐이다. 아래층에 강아지를 키우는 분이 있었는데, 아주 명랑한 강아지였지만 옥상에서 왕왕 짖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 강아지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출근을 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갈 때면 드라이기 소리나 대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소리는 집에서 들리진 않는다. 나는 복도에 들리는 소리로 우리집 소음이 어디까지 들리는지 판단하고 안심한다. 


소음에 강한 것은 신축이 아닌 오래된 건물의 장점인듯 하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에 이런 빌라형 건물이 많이 지어질 때 주로 공사를 맡은 특정 시공사가 있는지 건물의 느낌도 비슷하도 다 비슷비슷한 정도의 소음을 가지는 듯 하다.


이전에 살았던 집도 현재 살고 있는 집의 근처였는데, 지어진 시기도 비슷하고 집의 마감재나 느낌도 비슷했다. 그 집 위층엔 매주 금요일마다 파티를 즐기던 외국인이 살았었다. 가끔 층수를 착각하여 우리 집 벨을 누르던 다른 외국인들이 아니었으면 파티를 하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복도에선 무지막지한 소음이 들리지만 집안에 있으면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의 걷는 소리,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전화 통화하는 소리 사실 그 어떤 것도 소음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당시 시세보다 약간 비싼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면 살수록 월세라는 것 자체가 아까울 지언정 이 돈에 이정도 방음과 햇빛이면 꽤 괜찮은 집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집에서 계속 살고 싶었지만 집주인이 바뀌며 반강제로 나가야했다. 두 달 정도의 여유기간이 있었고, 이 집이 허물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겠다며 천하태평이었던 나는 그 집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이사를 나가는 소리가 들릴때면-이를테면 테이프 소리같은- 아, 참 부지런하다. 이런 생각만 했지 처음 한 달간은 적극적으로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도 조용했던 건물이었기 때문에 점차 건물의 생활 소음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 크게 의식을 하지 않았었다.


15가구 정도 살고 있는 건물이었다. 나는 통보받은 두 달을 거의 다 채우고 몇 집 밖에 남아있지 않은 순간까지 그 집에 살았다. 3주 전쯤에 다음 집이 구해지고 1주 전에 나의 이사도 정해졌다. 어차피 건물을 새로운 건물을 지을거라 빌라 내 세간살이를 떼가고 된다고 집주인이 말해주셔서 나는 빈 집에서 쓸만한 냉장고와 세탁기를 찾았다. 그 때 나는 이 건물에 3~4가구밖에 남지 않음을 알았고 그제서야 나는 이 침묵에 가까운 무소음이 무섭게 느껴졌다.


지금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주변에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겠구나. 재개발이 확정된 구역의 최후의 주거자도 이런 느낌이까? 온갖 생각이 들며 그제서야 무서워졌다. 이사가 결정되고 그 짧은 기간에도 이사를 가는 사람이 있었다. 주말이면 테이프 찢는 소리가 오전 내 들리다가 사라져서 이렇게 또 한 가구가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갔구나. 집이 더 조용해지겠다. 그 소리를 의식한 이후로는 테이프 소리가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정말 내가 제일 끝까지 남는 걸까? 다들 어디로 가시나요? 나도 데리고 가줘요!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기도 했다. 


요즘에도 다른 소리엔 그다지 예민하지 않는데 밖에서 나는 테이프 소리는 이상하게 신경이 곤두선다. 또 나를 두고 누군가 이사를 가는건가? 이 집도 설마?  얼마지나지 않아 문을 활짝 열어두고 도배를 하는 집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안심을 한다. 완벽하게 차단된 소음의 무서움을 겪고난 이후 나는 작은 소음이라도 있는 편이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집보다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그 때 이후로 심각하게 방음이 안 되는 집이 아니라면 소음에 좀 더 관대해졌다. 집 근처 스포츠 클럽에서 밤늦도록 소리 지르면서 노는 그 분들도,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로 추측되는 가끔 '숨듣명'을 들으면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몇 층에 사는 지도 모르는 여자 분들도. 새벽이면 집을 부술 듯 싸우는 아랫집 분들도. 그저 누군가 내 주변에 있다는 생각만으로 나를 든든하게 하는 분들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 이 집에서 이웃과 친해졌었다. 코로나로 팍팍해진 삶에 온 선물이었다. 마스크를 벗고 갈 수 있는 바깥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는데 그 중에 한 곳이 옥상이다. 오는 사람도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다. 옥상에서 만난 이웃은 강아지였다. 코로나로 산책이 힘들어지자 반려동물과 함께 옥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그렇게 몇 번 마주치면서 우린 말을 텄고 이웃님이 이사 가기 전까지 주말의 친구였다. 그러면서 집 주인이 이 집이 하나가 아니라는 둥, 이것 저것 동네 TMI를 많이 알게 됐었다. 나는 그 분이 이사 가면서 나는 또 동네 친구를 잃었다. 하지만 짧게는 1년, 길어도 2년 정도 계약하는 세입자들이 한 곳에 오래 산 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도 이제는 알기 때문에,  잠시였지만 너무 소중한 인연이었다고 생각하며 그 분을 기억한다. 아직도 그 집 앞을 지나면 나를 보 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던 멍멍이가 생각난다. 그 분의 이사가 결정되었을 즈음에 나도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며 이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었는데 그 때 문고리에 걸려있던 편지와 선물을 생각하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슬프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걱정이 되는 이웃도 있다. 바로 옆집에 살지만 아직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다. 옆 집 사람 한 번도 못 보는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이 분은 택배와 공과금 용지가 쌓여도 너무 쌓인다. 우편함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추측하기엔 오래 전부터 여기 살았던 분이고 여전히 그 분인 것 같다. 

여전히 그 분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하나밖에 없는데 바로 알람소리이다. 조용한 아 , 그 분의 알람은 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도 준비를 하고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어느 새 안들리긴 하지만, 복도에 나가보면 복도에 폰이 있는 것처럼 잘 들린다. 정말 이 분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새벽에 깊게 잠 들지 못한 날이면 이 소리가 정말 크게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될 때 이 알람소리를 들으면 열 받을 때도 있지만 납득도 된다. 


그 분도 혼자 사신다면,나를 깨울 건 나의 의지와 내 폰밖에 없다. 노크도 없이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6시 50분에 7시라고 깨우는 엄마도 없다. 이 분은 우편함도 언제나 꽉 차 있고, 집 앞에 택배도 꽤 오랫동안 쌓여있는 편이다. 


남의 집에 택배가 쌓이건 말건 사실 그건 의식해서 보지 않으니까 처음엔 신경도 안 썼는데, 우리집 우편함 바로 옆의 우편함에 우편물이 쌓이는 건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계속 우편함에 눈이 간다.

내 상상력은 안 좋은 쪽으로 잘 뻗어가서 혹시...?란 생각 을 하지만 가끔 배달 어플로 시킨 음식이 문 앞에 있거나 문 앞에 쌓여있는 택배가 주기적으로 정리(?)된느 걸 보고있자면 내가 생각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안심한다. 그 분은 쌓인 택배와 우편함을 보며 걱정하는 내가 조금 무서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며칠째 쌓여있는 택배를 보며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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