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지도가 나를 부르는 날

by 설안

내 안에 머무는 길이 먼저 나를 부를 때가 있다.


그동안 장소와 나 자신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연결된 많은 길을 걸어오면서 두 손으로도 다 펼칠 수 없는 내 안의 지도 속 어느 장소가 마음속에서 빛을 깜빡인다.


나가서 걷고 싶은데 집 근처를 산책하긴 싫고 어디론가 가보고 싶은 그런 날,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도통 가고 싶은 곳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 나를 벅차게 만들었던 어느 날의 장소가 내게 말을 건넨다.


집에서 10분만 나와 걸으면 바다가 펼쳐지는 제주 생활이었지만, 올레길 1코스에 말미오름과 알오름. 그리고 카페 솔옆수를 마음의 집처럼 여기며 살았다. 어쩌면 혼자 살게 되었던 제주에서의 시간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을 누려볼 절호의 기회였는데, 난 제주에서도 서울에서의 생활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냈던 것 같다.


오히려 천혜의 자연환경을 만난 기쁨 때문일까,

더 자주 거닐며 아무도 없는 길에 하늘과 땅과 나만 있다는 것을 만끽했다.


그 시간 동안 자연은 내게 집이었고 길 위에서의 시간은 나를 안아주는 품이었으며, 홀로 많은 길들을 거닐며 내게 집은 단순히 돌아갈 곳이 아니라 온전히 쉴 수 있는 곳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으로부터 온전한 내가 될 수 있는지를 안다는 사실은’ 제주에서 몸과 마음이 힘든 시간을 보내며 쉬는 날이면 끝없는 잠에 빠져 있던 나를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내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


무언가를 정말 좋아하는 마음 바탕에는 그저 행복하고 평온해지는 마음도 있지만, 어쩌면 걷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했다는 나의 다짐은 나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었음을 바라본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나를 덜어내고 깎아나가야만 할 때, 길을 걸으며 다시 나를 빚어내는 그 마음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다.


걸으면서 단단해진 마음은 길 위를 걸어가는 많은 걸음들이 다져온 시간들이 내게 스며든 것이라 믿는다. '나의 여린 속을 감싸 안아주던 보호막 같은 포근함 덕분에 터지지 않는 단단한 원형이 되었을까.'


많은 고민 끝에, 그럼에도 나아가고자 걸음을 내디뎠던 이들의 용기와 희망에 나의 걸음을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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