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지키는 삶>
“모르는 사람이 때렸어요!” 하는 신고에 출동했더니 술 냄새를 잔뜩 풍기는 두 사람이 아파트 현관에서 실랑이하고 있었다. 스물한둘이나 되었을 성싶은 젊은 남자와 쉰 살 남짓되어 보이는 건장한 남자였다.
각자 “이 아저씨가 어디에 사는지 확인해 달라!” “이놈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아느냐!”며 악다구니를 쓰는데, 떼놓고 신원을 확인해 보니 젊은 남자는 4층 6호, 중년의 남자는 같은 층 7호에 사는 사람.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이웃이 어쩌다 이 야심한 시각에 주먹다짐을 하게 되었나. 둘이 서로 노려보고 소리치고 삿대질하는 와중에 밝혀진 사건의 전말은 이런 것이었다.
자정 지난 깊은 밤. 남자 6호와 남자 7호가 술기운이 올라 불콰해진 얼굴로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게 되었다. 서로 일면식 없는 상대방을 곁눈질로 살피던 중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둘은 함께 그 안으로 들어섰다. 문 닫힌 엘리베이터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하느라 버튼도 누르지 않고 꼼짝없이 서 있기만 했다.
얼마간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남자 7호가 4층 버튼을 눌렀다. 그는 처음 보는 젊은이가 자신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타고서는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만 보고 있는 모습이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남자 6호는 자신이 4층에 산다는 사실을 낯선 이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남자 7호가 목소리를 한껏 낮춰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물었지만 남자 6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침묵. 4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어도 두 사람은 상대방이 먼저 발을 떼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이번에도 남자 7호가 먼저 움직였다. 남자 7호는 남자 6호를 엘리베이터 안에 남겨두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는데, 남자 6호가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며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술 취한 젊은 놈이 뭘 하려는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저놈이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저러나? 아니면 패거리라도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남자 7호는 남자 6호를 향해 몸을 돌려 일갈했다.
“나한테 볼 일 있냐?”
한편 남자 6호는 겁이 났다.
‘저놈은 누구지? 내가 몇 층에 사는지, 언제 집에 들어올지 미리 알고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밤에는 나랑 엄마밖에 없는데, 집까지 쫓아오면 어쩌지? 저놈이 복도를 막고 서 있으니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어떻게 하지? 무얼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원하는 대로 안 해 주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남자 6호는 불현듯 엘리베이터에서 뛰쳐나와 계단으로 내달렸고, 남자 7호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벙쪄 있다가 층계참 어두운 곳에 급히 몸을 숨겼다.
그러기를 오 분쯤. 남자 6호는 1층에서 한참 동안 숨을 고른 뒤 이쯤이면 놈도 포기하고 갔겠지 싶어 계단으로 다시 올라갔다. 하지만 그놈은 여전히 집 앞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한편 다시 돌아온 6호를 본 남자 7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놈이 역시 되돌아올 줄은 알았지만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으니 일단 먼저 한 방 때려야겠다!’
“야, 이 새끼야! 너 뭐 하는 놈이야!”
술에 취하면 쓸데없는 기운이 솟아나는 사람이 있다지만
반대로 온갖 일들에 겁이 나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혼자일 때보다 둘이 걷는 밤길이 더 무서울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벌어지는 일들은 종종 집에서 기다리던 가족을 부끄럽게 만든다.
말하자면 이사한 지 한 달 만에 처음 만난 이웃을
통성명 시키는 일이 경찰관의 몫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사회 안에서 술에 취한 채 이웃을 폭행하고 살인하는 사건이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술에 취해 아파트 이웃 주민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50대 조폭, 자신의 상해 사건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술을 먹고 찾아가 폭행하여 숨지게 한 50대 남성.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이들이 최근에 와서는 어쩌다가 이렇게 주먹다짐을 하게 되고 경찰까지 출동하여 조사를 받게 된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