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지키는 삶>
너네 동네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어.
그래도 경찰이 하고 싶어?
2004년 초 서울.
서너 달 사이 인접한 몇 개 구에서 피해자가 여성인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범인은 오리무중이었고 시간이 흐르자 사건들은 ‘서울 서남부 지역 연쇄 살인’이라고 통칭되었다.
그해 5월의 비 내리던 늦은 밤. B 공원 후문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던 대학생 커플이 있었다. 남자가 지하철 막차를 타려던 참에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에서 여자친구는 “나 칼에 찔렸어…….” 하고 속삭였다. 남자는 피 웅덩이 속에서 발견한 여자친구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내달렸지만 여자는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그 공원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300미터도 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이제 위험은 학교 울타리 바로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서너 명씩 무리 지어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가라고 했고, 선생님들은 당번을 정해 하굣길을 감독하고 공원 어귀를 순찰했다. 동네에서도 순찰차가 눈에 띄지 않는 때와 곳이 없었는데, 주민들은 순찰차 경광등을 성가시게 여기면서도 위안으로 삼았다. 그런 일을 겪으며 나는 ‘어떤 인간이 이런 짓을 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며 사건의 여파는 점차 잦아들었고 학교생활은 다시 단조롭고 고단해졌다. 수능 성적표가 나오자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지금도 경찰이 되고 싶냐?”고 물으셨다.
“전엔 그랬는데요.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야, 너 할 거라며, 경찰! 아니면 뭐 할래?”
“글쎄요…….”
“뜻을 세웠으면 인마, 못 먹어도 고 해야지.”
나는 그렇게 경찰행정학과에 원서를 쓰게 되었다.
대학 생활은 다사다난했다. 우리 과 학생들은 입학 성적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었고 다수가 장학생으로 학교에 들어왔지만, 학과 생활을 하며 두 번째 학기까지 장학금을 유지할 수 있었던 친구를 손에 꼽기에는 손가락이 너무 많았다. 그렇지만 “하려면 할 수 있잖아?”라며 여러모로 우리를 담금질했던 선배들 덕분에 여러 의미에서 대범해지고 초연해질 수 있었다. (밥 사주고 술 사 주며 유도 가르치고 남산 달리기 시키고. 힘들어도 힘든 티 내지 마, 하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대학교에서 두 해를 보내자 단골 술집 두어 곳, 사랑한다고 하면 “미쳤냐?”고 할지언정 당황하지는 않을 쉰 명의 친구들, 그리고 낮에는 자전거를 타고 밤에는 각 지역에 근무하는 선배들에게 술을 얻어 마시며 나흘 만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 일 따위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이 남았다. 그러면서 ‘(빡센 과 생활도 했는데) 뭐든 하려면 할 수 있지.’ 하는 치기 어린 좌우명을 얻었다.
2학년을 마치자 친구들은 군대로, 신림동 고시촌으로, 어디론가 떠났다. 나는 충동적으로 휴학계를 제출했다.
이런저런 사정 끝에 동네 작은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乙이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같이 사는 고향 친구가 남자친구와 살림을 합치게 되어 짐을 빼 주기로 했는데, 근처에는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방이 없어서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매니저는 “이달은 아직 보름밖에 안 지났고 가게는 30일이 월급날이니 이달치 급료는 줄 수 없다.”고 했다. 乙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대꾸 없이 라커를 정리해서 나갔다.
나는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매니저에게 “乙한테 보름치 급료를 주어야 옳은 게 아닌가요?”하고 물었다.
“신경 꺼. 본인이 안 받겠다고 하고 나갔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그럼 내가 지금 그만두더라도 乙에게처럼 한 푼도 안 주겠냐고 물었다. 그달의 스무 번째 날쯤 되었을 때였다. 성가셔하는 표정과 함께 당연히 그럴 거라고, 너도 그만두려면 마음대로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그만두마. 다만 나와 乙에게 이달 급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가만히 안 있을 테다. 두고 보자.” 하고 을렀다. 며칠 지나자 최저임금으로 셈한 스무 날치 급료가 입금되었다. 이럴까 말까, 저럴까 말까 하다가 경찰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 바로 그때였다. 나는 그 돈으로 경찰시험 수험서를 사고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다.
속 모르는 사람은 이 일이 철밥통이라 좋기만 하지 나쁠 게 뭐 있겠냐고 할 테지만,
알고 보면 우리 밥통 속에는 곤란과 시련과 속상함과 눈물 같은 게 마구 뒤섞여 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꾸역꾸역 집어 삼키며 일하고 있다. 정말이다.
그러니 철밥통 안에 뭐가 들었는지 한 번 관심 가져 주시라고.
그러면 우리 경찰이, 조금은 안쓰럽지만 친근하게 느껴지게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저자가 고등학생 당시, 서울 서남부에서 아주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영화 <목격자>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죠. 저자는 경찰이 되고 싶어 했지만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해당 사건이 발생하고 나니 경찰행정학과로의 진학을 고민하게 되고 결국 진학을 한 후에도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세상에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늘어났고, 저자는 결국 경찰이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경찰관은 공무원이라 좋은 직업 아니냐고 하실 수 있지만 사실은 이렇게 안타까운 사건들 속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일하고 있다는 것을 시민으로서 기억하고 있으면 좋을 듯합니다.
경찰 에세이 《혼자를 지키는 삶》 자세히 보러 가기